[쁘띠리뷰+This is Moment] 침묵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연극 ‘겟팅아웃’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3-07-07 18:00 수정일 2023-07-07 18:00 발행일 2023-07-07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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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겟팅아웃
연극 ‘겟팅아웃’ 마지막 장면(사진=허미선 기자)

침묵 속 단 하나의 색, 한 줄기의 빛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연극 ‘겟팅아웃’(7월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의 마지막이 그렇다. 꽉 닫힌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알린(이경미)의 행복을 간절하게 빌게 되는, 그래서 어쩌면 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지게 하는 장면이다.

서울시극단장인 고선웅 연출작인 ‘겟팅아웃’은 ‘잘자요, 엄마’ ‘비밀의 정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의 퓰리처상 수상작가 마샤 노먼(Marsha Norman) 작품이다. 이제는 공연가에서 꽤 흔한 1인 2역이 아닌, 두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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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겟팅아웃’ 장면(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총알이 엉겁결에 발사되면서 과실치사범으로 복역하다 이제 막 출소해 이름까지 바꾸고 새 삶을 꿈꾸는 알린(이경미)과 방황하고 사고뭉치였던 그의 과거 알리(유유진)의 이야기가 한 무대 위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교도소에서 나가기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꿈을 꾸던 알린은 이름까지 바꾸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지만 그가 내디딘 세상은 녹록치 않다. 

꿈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해야하지만 전과자인 그가 할 수 있는 일과 급여는 절망적이다. 주변은 여전히 위태롭고 불신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온통 현혹될 만한 것들 투성이다. 

그 의도가 불분명한 늙은 교도관 베니(정원조)는 굳이 알린의 곁에 머물겠다 성화고 엄마(박윤정)는 여전히 딸을 믿지 못한다. 교도소에 투옥되기 전부터 함께 일했던 탈옥수 칼(서우진)은 자랑스럽지 않은 과거처럼 큰 돈을 벌러 뉴욕으로 가자 위협한다.

알린이 이들과 더불어 짓지도 않은 절도죄로 전과자가 됐지만 잘 살아가는 듯 보이는 윗집의 루비(최나라) 등과 얽히며 후회하고 절망하면서도 다시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과정은 그야말로 처절하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그만큼 많은 대사가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불꺼진 무대 위 한 줄기 빛을 받으며 빛나는, 알린이 새 보금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 놓고 싶어했던 화분이다.

사실 이 장면은 극에 포함되지 않은, 그저 여운처럼 관객에게 다가갈 순간일지도 모른다. 좀체 떼어낼 수 없고 외면할수록 선명해지는 과거 알리와 분투 끝에 침묵과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받으며 노랗게 빛나는 화분마냥 알린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게 하는, 어쩌면 누구에게나 올지 모를 꿈의 실현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알린들에게 고하는 안녕이자 위로와도 같은 순간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