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6·25때 한국 위해 목숨 바친 희생을 기억합니다

이무선 명예기자
입력일 2023-06-22 13:06 수정일 2023-06-22 16:48 발행일 2023-06-2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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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탐방> 은평평화공원
23.06.16 사진
'윌리엄 해밀턴 쇼' 동상.

서울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 군복차림의 동상이 있다.

6.25 전쟁 첫 해인 1950년 9월22일 서울 수복 작전때 녹번리 전투에서 29세의 나이로 전사한 미국 해군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를 기리는 조형물이다.

동상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성경구절이 새겨져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한국 선교사 ‘윌리엄 얼 쇼’의 외아들로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해군 소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1947년 한국으로 돌아와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며 한국해안 경비대 창설에 기여했다. 제대후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중 6.25전쟁이 터지자 젊은 두 부인과 두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재 입대했다. 이때 그는 부모와 주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편히 공부만 하고 있겠는가.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다.”

유창한 한국어로 맥아더 장군을 보좌하며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한 뒤 그는 해병대로 보직을 바꿔 서울 탈환에 나섰다가 인민군 매복로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

그의 숭고한 사랑에 감명 받은 미국 감리 교인들은 아버지 ‘윌리엄 얼 쇼’가 공동 창립한 대전 감리교 신학교(현 목원대)에 ‘윌리엄 얼 쇼’ 기념교회를 건립했다.

그의 부인은 남편 잃은 슬픔속에서도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로와 이화여대 교수와 세브란스 병원 자원봉사자로 평생을 바쳤다.

이무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