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클릭 시사] 소서팔사(消暑八事)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3-03-20 14:07 수정일 2023-03-20 14:08 발행일 2023-03-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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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양반들은 ‘체면’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겼던 탓에 여름을 보내는데 적지않이 어려움을 겪었다. 서민들처럼 웃통을 벗어 제치고 다닐 수도 없었고, 아랫 사람들과 함께 개울에 발 담그는 조차 꺼렸다. 아무리 더워도 정장에 삿갓까지 갖춰 입어야 했으니, 더위를 피할 나름의 묘안들이 필요했다.

다산 정약용이 더운 여름을 이기는 방법을 정리한 것이 소서팔사(消暑八事)다.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멋진 방법’이다. 그는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빈 누각에서 투호 놀이 하기, 깨끗한 대나무 자리에서 바둑 두기, 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동쪽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오는 날 시 짓기, 그리고 달 밤에 개울에서 발 씻기를 제시했다.

더위를 피하고자 남들처럼 물 속으로 텀벙 들어갈 수 없었던 우리 양반네 선조들은 물가를 찾아 더위를 피하는 ‘피서(避暑)’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수양함으로써 더위를 잠시 잊는 ‘망서(忘暑)’를 택했던 셈이다. 더위에 ‘맞서기’ 보다 더위를 ‘잊는’ 차선을 택했던 것이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