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적은 이란’ 파문 확산에도 외교 성과만 강조하는 윤 대통령

권규홍 기자
입력일 2023-01-21 05:21 수정일 2023-01-21 05:21 발행일 2023-01-2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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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오해가 풀린다면 정상화 신속하게 될 것\"
민주당 \"한-이란 관계 최악으로 치달아\"
전문가 \"이란 국민들이 갖고 있는 당황함과 분노는 훨씬 커\"
아크부대원들과 기념촬영하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현지에 파병중인 아크부대를 방문, 장병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아크부대 방문 당시 ‘UAE적은 이란’이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이란 정부는 우리 정부에 입장을 요구하며 주이란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했고, 외교부도 이에 질세라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해 양국간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에도 대통령실은 이란이 ‘오해한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가벼이 여기고 있고, 당사자인 윤 대통령 역시 별다른 해명이나 사과 입장 없이 순방 성과만 강조하고 있어 파문이 쉽게 가라앉기는 어려울 조짐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각)스위스 다보스 현지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이번 사태를 놓고 “(윤 대통령이)아크부대 장병들에게 UAE가 직면한 엄중한 안보 현실을 직시하면서 열심히 근무하라는 그런 취지의 말씀이셨다”며 “해당 발언은 한-이란 관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다소 이란 측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그 오해라는 것이 어제 주한이란대사관을 통해서 나온 입장문을 보니까 거기서 동결 자금 문제와 윤 대통령의 핵무장 발언과 같은 것들을 문제 삼는 것을 보고 이게 초점이 조금 흐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오해였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증명이 됐다”며 “우리 측에서도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해서 설명을 명확하게 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오해가 풀린다면 제가 볼 때는 정상화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관계자는 이란에 특사를 보내거나 고위급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냐는 질문에 “오해는 제가 볼 때는 풀릴 수 있다고 본다. 오해를 증폭시켜서 문제를 어렵게 만들 생각은 양측 모두 없을 것이라고 저희들은 보고 있다”며 “그렇기에 오해를 풀기 위해 말한 방법(특사, 고위급 대화)들은 현재로서는 조금 ‘오버하는 행동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 18일(현지시각)이란 외무부는 테헤란에서 윤강현 주이란 한국대사를 초치해 윤 대통령의 발언에 항의했고, 이에 외교부도 19일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해 “이란의 국제관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야당은 일제히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맹비판 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0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양국이 서로 대사를 초치하면서 한-이란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도리어 UAE와의 관계도 악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며 “UAE와의 비밀군사협정으로 불똥이 튀면 국익에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이다. 국내 원유 5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어려워지면 우리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지하고 무책임한 대통령이 외교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란은 동결 자금 문제 등으로 얽혀있어 각별한 외교적 관리가 필요한 국가다. 그런데 실리도 명분도 모두 잃은 대통령의 발언으로 외교적 부채만 쌓이고 있다”며 이번 사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결자해지를 요구했다.

이어 정청래 최고위원도 “외교적 관계를 초치는 발언으로 양국이 ‘초치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국익을 위해 윤 대통령을 출국금지 시키자는 세간의 분노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고 날을 세웠다.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도 이날 유튜브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란이 우리 대사를 부른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 맞대응한 것이라면 양국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정부는 자존심 싸움으로 가선 안 된다”고 이란에 특사를 보낼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 같은 논란이 연일 확산됨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윤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신 윤 대통령은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UAE-스위스 순방을 마친 소감을 밝혔는데, 논란이 된 발언에 대한 해명은 한마디도 없이 이번 순방의 성과만 부각시키는데 치중했다.

윤 대통령은 “모든 일정의 중심을 경제에 두고 우리 경제인들과 함께 뛰었다. UAE로부터 300억 달러 투자 결정을 이끌어 냈고 글로벌 CEO와 만나 한국에 대한 투자를 요청했다”고 적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서 열린 석학들과의 대화, 두바이 미래 박물관 방문 등을 언급하며 “새로운 지도를 만들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밝혔다.

대통령실과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대응에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희수 성공회대 이슬람 문화연구소 석좌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실 이란에게 한국은 최고의 나라였다. 발전의 롤모델이었고 또 한류가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이었다”면서 “그래서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이란 국민들이 갖고 있는 그 당황함과 분노는 훨씬 크다, 그걸 우리가 유념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도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외교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데 이 부분(UAE-이란관계)에 대해서 깊이 공부를 안 하시는 것 같다”며 “왜냐하면 다자회담은 열 몇 개 국가 정상을 만나야 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지금은 양자다. 그리고 6박 8일이다. 이 일정도 굉장히 느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김 전 원장은 이란 동결 자금 문제를 언급하며 “(정부는)이걸 어떻게든 풀려고 했다. 상당 부분 여기에 접근을 했었다. 대납으로 변제한다든지 또는 물건으로 간다는 걸 상당히 합의했었다. 이란도 한국이 미국의 압박 속에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했다고 좋게 생각했었다”며 “그런데 이번에 이 일로 그 문제가 다시 등장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권규홍 기자 spikekwo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