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尹 ‘한미공동 핵 연습’ 발언 놓고 대통령실 진화 진땀...전문가 “美, 한번도 비핵국가들과 핵 연습한 사례 없어”

권규홍 기자
입력일 2023-01-04 17:14 수정일 2023-02-09 11:39 발행일 2023-01-0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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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핵 우산 넘어 확산 억제에 기여할 방안, 양국간 논의 되어 있어"
이재명 "외교, 안보 참사 근절하는 계기 되어야"
양무진 "한반도 안보 불안하면 누가 투자하려 들겠나"
US Korea Jong-sup <YONHAP NO-0504> (AP)
미 전략폭격기 B-52를 찾은 한미 국방부장관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한 언론사와의 신년 인터뷰를 통해 ‘한·미 핵전력 공동기획-공동연습’ 계획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의 핵을 한미가 함께 운용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동 핵 연습 논의를 거부한다는 발언을 해 양국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고, 잘못된 표현으로 빚어진 해프닝으로 일단락이 됐지만 한미간 미묘한 입장차가 드러났다는 정치권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를 통해 ‘한·미 핵전력 공동기획-공동연습’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제는 실효적 확장 억제를 위해 미국과 핵에 대한 ‘공동 기획, 공동 연습’ 개념을 논의하고 있고 미국도 이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이라면서 “핵무기는 미국의 것이지만, 계획과 정보 공유, 연습과 훈련은 한미가 공동으로 해야 한다. 한미가 공동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종전의 확장억제 개념에서는 굉장히 진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2일(현지시각)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한국과 공동 핵 연습을 논의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No)”라고 짧게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파문이 일었고, 김은혜 홍보수석은 “오늘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로이터 기자가 거두절미하고 ‘공동 핵 연습을 논의하고 있는지’ 물으니 당연히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 “공동 핵 연습(Joint nuclear exercise)은 핵보유국들 사이에서 가능한 용어”라며 논란을 진화하는데 진땀을 흘렸다.

또 4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양 국가 간의 정보 공유, 공동 기획, 공동 실행에 관한 것은 지난 11월에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이미 합의된 사안”이라며 “그것은 기존의 핵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핵 우산을 넘어 실질적인 확산 억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양국 간에 긴밀한 논의가 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핵을 보유한 동맹국과 실시하는 공개적인 핵 연습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회원국들과의 연례훈련인 ‘스테드패스트 눈’(Steadfast Noon)이 유일하다.

이 연습은 미국의 핵무기를 동맹국의 핵·재래식 이중 용도 항공기에 장착해 투하하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숙달하는 과정으로 알려졌는데, 역시 비핵 국가인 우리나라와는 진행 할 수 없는 연습이다.

한미간 핵 연습을 두고 외교적 해프닝이 일어나자 야당은 윤 대통령을 맹비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신중하지 못한, 경솔한 발언은 안보 위기·경제 혼란에 기름을 붓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며 “일련의 사태를 단순히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외교 참사, 안보 참사를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비판 했다.

이어 박홍근 원내대표도 “외교·안보 위기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다. 윤 대통령은 무인기 침공 대응 실패에 이어 ‘전쟁’, ‘핵’, ‘확전’이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대책 없이 한반도 긴장만 높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페이스북에 “외교, 안보 관련 메시지는 늘 신중해야 한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 공격에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지만 남북한 정상들이 강대강으로 전쟁 불사 운운하면 진짜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 윤 대통령에게 신중한 발언을 촉구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통화에서 “한미 핵 공동기획 연습·공동기획은 매우 포괄적이다. 미국이 대북 핵 정책·전략 이런 것 들을 수립하는데 한국이 그 과정에 참여 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미국이 용납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핵 연습은 핵을 가지고 전쟁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한번도 비핵국가들과 이런 것을 연습한 사례가 없다”며 윤 대통령의 발언이 현실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 대응과 관련해서 너무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대통령의 자리는 고뇌에 찬 결단의 자리여야 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억제에 방점을 찍고 (안보 상황을)관리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국가들을 보면 보통 역할 분담을 해서 메시지를 낸다. 따라서 국방부 장관의 메시지와 대통령의 메시지는 확연히 달라야 한다”며 “국방부장관 입장에서는 확전을 각오한다는식의 원칙적인 메시지를 낼 수 있지만 대통령은 오히려 그것을 누그러 뜨리면서 국민들을 안심 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 체제·수출 주도형 국가에서는 한반도의 안정이 곧 경제안정이 된다”며 “그런데 한반도의 안보가 불안한데 누가 투자하려 들겠는가. 그렇기에 최근 윤 대통령의 강경한 메시지들은 매우 우려가 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권규홍 기자 spikekwo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