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더컬처] 서울시향과 ‘합창’ 지휘자 김선욱 “매순간 한계와의 싸움, 이번에도 후회는 없어요!”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2-12-15 18:30 수정일 2022-12-15 19:35 발행일 2022-12-15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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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광복 77주년 기념 음악회_(6)_ⓒGwansu Kim
김선욱ⓒGwansu Kim(사진제공=서울시햐ㅕㅇ)

“항상 제 한계와 싸우고 있어요. 제게 주어진 데 대해서는 정말 후회 없을 정도로 노력하죠. 그 과정이 별로 힘들지 않아요. 저는 음악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 좋아하는 음악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자체로 이미 꿈을 이룬 거라서 주어진 모든 과제나 과정들에 불만이 있거나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아요. 이번 ‘합창’ 교향곡 지휘도 준비 기간은 짧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자기 전까지 후회 없이 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에 대한 판단은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이 매해 연말이면 선보이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교향곡 9번 합창’(Symphony No. 9 ‘Choral’)의 지휘봉을 잡은 과정은 긴박했다.

그는 6일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 40주년 공연을 마치고 다음날 독일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6일 오후 3시쯤 해외에 체류 중이던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Osmo Vanska) 음악감독이 낙상사고 소식을 전해왔다. 정기공연 ‘합창’의 지휘가 어렵다고 판단한 서울시향 공연기획팀은 김선욱에게 전화해 “14, 15, 16일이 공연이고 월요일(12일)부터 리허설인데 가능하냐”고 물었다. “공항갈 때까지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김선욱은 짧지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연말에 여러 피아노 연주가 있고 다른 레퍼토리를 천천히 준비하기 위해 돌아가야 했어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이후 연말 스케줄들까지 부담이기도 했죠. 사실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컸어요. 공항으로 가는 3, 40분 동안 제 만 34년 일생에서 제일 고심했어요.”

◇결국 ‘합창’ 그리고 베토벤
[사진] 김선욱_지휘_(2)_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김선ⓒMarco Borggreve(사진제공=서울시향)

“결국 하게 된 이유는 베토벤이었어요. 제가 교향곡 9번(합창)을 처음 들었을 때가 1999년 12월 31일이었어요. 정명훈 선생님이 지휘하신 코리안심포니와 장영주 협연의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를 맨 앞에서 봤죠.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그때도 전 지휘자를 꿈꾸던 아이였고 그때 ‘합창’을 듣고는 ‘이걸 지휘하는 순간이 나에게도 올까’라는 마음을 가지게 됐죠.”

이어 “오케스트라 사이즈도 크고 대규모 합창단이 동원되는 등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가야하는 합창은 지휘자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곡이 아니다. 상임지휘자가 아닌 이상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제가 이번 ‘합창’ 지휘를 하기로 결정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해요. 더불어 베토벤은 피아니스트로서도 많이 연주했고 작곡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나 아이디어, 해석들을 교향곡으로 담는 데 크게 어렵거나 부담은 아니었어요. 수백번은 들었지만 듣는 것과 악보를 보며 공부하는 건 다르죠.”

고심 끝에 김선욱은 서울시향 ‘합창’ 지휘대에 오를 채비에 돌입했다. 스스로 “자가격리”라고 표현할 정도로 “호텔에 다시 도착한 시간이 수요일(7일) 12시경이었는데 점심 먹고 한시부터 일요일까지 밥먹을 때 말고는 호텔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준비했다.”

“4일 동안 14, 15시간씩 ‘합창’만 준비했어요. 짧은 시간에 온 영혼과 정성, 생각 등을 다 투입해서 한 게 얼마만인가 싶어요. 저는 시간을 충분히 들여 꾸준히 준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3달 뒤 있을 연주도 하루 몇분이라도 쳐보고 음악을 소화시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렇게 준비를 시작한 첫날을 김선욱은 “음악 자체가 가진 힘이 어마어마해서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압도가 됐다. 이 악보가 가진 힘이 너무 커 악보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베토벤 음악이 그래요. 이 음악을 모아서 주무르려면 정말 머리를 많이 써야 하거든요. 첫날, 둘째 날이 진짜 힘들었어요. 음표들이 주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했거든요. 3악장은 마음이 이상해지고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너무 뜨거워지고 쿡쿡 찌르고 아프고 너무 희망을 노래하는데 희망은 보이지 않고…. 그러다 4악장에서는 갑자기 하늘의 신성한 존재와 접속을 시도하는 것도 같고…인류애, 형제애까지 나오니까 정신이 혼미해지더라고요.”

첫날과 둘째 날을 있는 그대로의 ‘합창’을 받아들이는 데 보낸 끝에야 “조금씩 그 불덩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됐다”는 김선욱은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다 거칠 거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해석한다는 건 이런 과정이 없으면 할 수 없으니까”라고 말을 보탰다.

◇베토벤 이상 구현의 근간,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사진] 김선욱_지휘_(1)_ⓒMarco Borggreve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김선ⓒMarco Borggreve(사진제공=서울시향)

“교향곡 ‘합창’은 베토벤의 후기 작품 중에서도 끝에 자리한 곡이에요. 저는 여전히 ‘피아노 소나타’ 32개가 베토벤 인생과 음악의 근간이 된다고 믿고 있어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현악 4중주’ ‘교향곡’은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죠. 베토벤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 구현을 위해 악기 자체를 크게 다루지 않았어요. 어떤 악기를 위해 쓰기보다 ‘피아노 소나타’라는 영감 하나로 자신의 이상을 순간순간 표현했죠.”

그는 “베토벤이 자신의 온갖 열정을 다 쏟아 부은 작품이 ‘합창’이다. 형식적으로 쓴 1악장부터 혁신적인 2악장, 3악장에도 (‘피아노 소나타’라는 영감 하나로 자신의 이상을 순간순간 표현한) 그런 부분이 많다”고 부연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브릿지경제DB, 빈체로 제공)

“예를 들어 퍼스트 바이올린일 때는 오른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브라스나 목관은 왼손으로 하죠. 화음을 쓰는 게 ‘피아나 소나타’와 대비해도 이상할 게 없어요. ‘현악 4중주’도, ‘교향곡’도 그래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10년 전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게 굉장히 도움이 됐죠.”

이어 “다이내믹도 항상, 제가 귀가 안들렸을 때를 상상한다. 정말 작은 음과 큰 음은 지금 듣는 데시벨 한계보다 높았을 것”이라며 “항상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와 음향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도 똑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무대에 조명이 켜지는 순간부터 음악이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 시작부터 잔향이 남는 마지막까지 어떻게 한 호흡으로 들리게 하느냐가 제가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거죠. 그런 몰입감, 긴장감, 그 시간을 선보이면서 관객들이 다른 건 잊고 음악에 집중하게끔 만들고 싶어요. ”

그리곤 “풀어주기도 하고 조이기도 하면서 음악 안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저희의 몫”이라며 “작곡가들이 쓴 악보는 흰 종이에 검은 음표다. 그 검은 음표들에 어떻게 생명을 부여하느냐는 첫음과 끝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영감을 받은 분들께 들은 얘기가 있어요. ‘바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고 모차르트는 놀 노래하고 하이든은 말하고 베토벤은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베토벤 음악은 이해할 수 없어요. 본능적으로 즐기려고 하면 위험하죠. 단순히 흥에 맡겨서 즐기는 음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철저한 계획과 목적, 의지력이 포함돼야 하죠. 그런 베토벤의 역작, 전세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의 청자가 아닌 만들어가는 입장에 있을 수 있는 건 저로서는 굉장히 뜻깊은 작업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 지휘자?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음악가”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브릿지경제DB, 빈체로 제공)

“누구에게나 첫 지휘의 순간이 있고 어떤 곡을 처음 지휘하는 때는 필요하기도 해요. 처음이 있어야 점점 더 발전하고 성숙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시향의) 솔리스트들과 합창단 분들게 많이 도와달라고 했어요. 사실 결과는 잘 모르겠어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많은 것이 일어나거든요. 리허설 때 너무 많은 교감을 했고 즐거웠어요.”

이렇게 전한 김선욱은 “협연자로 왔을 때는 노크를 하고 들어가 잠깐 차 한잔을 하고 가는 기분이라면 지휘자는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내는 느낌”이라며 “장단점은 있지만 지휘는 훨씬 교감하고 대화하는 작업”이라고 부연했다.

“지휘나 피아노나 되게 고독한 작업이긴 해요. 결국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혼자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거든요. 피아노와 지휘는 방법 자체는 다르지만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요. 피아노 한대만 놓인 무대도 굉장한 설렘을 주고 무대 위 모든 연주자들과 악기들이 하나를 향해 달려가는 지휘는 상반된 매럭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 Photo by Marco Borggreve(사진=브릿지경제DB, 빈체로 제공)

그리곤 결국 피아노도 축소된 오케스트라고 오케스트라는 팽창된 피아노기 때문에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를 꿈꾸는 건 자연스러웠다”고 밝혔다. 

저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피아노를 친다고 전혀 생각 안해요. 지휘를 할 때도 지휘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항상 음악가라고 생각하죠. 항상 그랬어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음악을 만들 뿐이죠.”

그는 스스로를 “아주 어려서부터 음악에 미친 어린이였고 음악을 사랑하는 소년”으로 표현하며 “콩쿠르를 할 때도 제가 사랑하는 음악을 보다 많은 고객들을 위해 연주할 기회가 많아져서 좋았다. 너무 어려서부터 지휘자가 되고 싶었고 피아노 연주 기회가 많아져서 (지휘자 데뷔가) 늦어졌을 뿐”이라고 털어 놓았다.

“신인 지휘자로서 피아노와 병행하면서도 매순간 제 한계에 부딪히면서 살아요. 24시간이 너무 짧아요. 두 가지를 다 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주어진 연주에 대해 극한으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죠.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를 겸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편견도 있어요. 지휘를 시작하면서 ‘피아노를 그만 두냐’고 묻는 분들도 많죠. 하지만 저는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이어 “피아노 연주 기회가 더 많아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 이제 피아노는 저와 친한 친구 같아서 협연이 훨씬 익숙하다면 지휘는 현재 진행형”이라 밝힌 김선욱은 이후 커리어 매니지먼트에 대해 “커리어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계획할 수 없다. 콩쿠르가 많은 연주기회를 주지만 그 기회가 10, 20, 30년간 유지한다는 건 바늘구멍에 코끼리가 들어가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장기전이죠. 그래서 하루라도 허비할 수 없어요.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축복이기도 하죠. 영국에서 데뷔한 본머스 심포니가 이번 시즌, 다음 시즌에도 초대를 해서 지휘만 해요. 지난해 지휘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저도 알고 싶었어요. 이 새로운 음악, 직업을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거의 2년을 보낸 지금은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물론 저는 갈 길이 먼 음악가다 보니 지휘를 할 때마다 정말 많이 배워요. 매번 가능한 최대로 체득하려고 노력하죠. 제 음악가로서의 행보는 현재 진행형이고 계속 꾸준히 피아노를 연주하고 지휘를 할 거예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