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예술’ 그 이름만으로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2-12-06 15:14 수정일 2022-12-07 00:08 발행일 2022-12-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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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문화부장

유혈이 낭자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하늘에서는 피아노가 떨어져 내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풍경은 실제로 전장에 비행기로 공수한 피아노전문기업 스타인웨이&선즈(Steinway & Sons)가 특수제작한 군용 피아노였다.

폭 100㎝, 무게 200㎏ 이하의 빅토리 버티컬(Victory Verticals) 피아노 2500개는 상자에 담겨 3대륙에서 전쟁 중인 미군들에게 떨어졌다. 바로 옆까지 다가온 죽음의 공포, 그만큼 멀어진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피폐해진 군인들에게 ‘예술’은 절실하게 붙잡을 유일한 그리고 마지막 빛이었다.

피아노의 거장 세이모어 번스타인(Seymour Bernstein)은 6·25전쟁 당시 참전한 미군으로 최전선에서 8개월간 100여 차례의 연주를 했던 소위 ‘피아노 연주병’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벌써 1년여를 이어지고 있는 전쟁 참사에서도 예술은 힘을 발휘 중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모두가 떠나버린 우크라이나 호텔 로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년을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모여든 폴란드 접경지역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름 모를 아티스트들까지 예술가들은 릴레이 연주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2년여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10월 이태원 참사로 극심해진 집단 우울증과 그 원인을 알다가도 모를 분노는 ‘예술’로 위안받고 치유됨을 증명하고 있다. 조용필, 이미자 등 한국 가수들과 조수미, 양방언, 사라 브라이트만 등 글로벌 뮤지션, 임윤찬, 조성진, 양인모, 김선욱 등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비롯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프랑스 메츠국립오케스트라, 크루크너 오케스트라 린츠, 유럽 쳄버 오케스트라 등의 내한 등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렇게 잊고 있던 예술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한해의 축제 같은 이때 더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6년만의 내한공연 ‘크리스마스 심포니’에서 사라 브라이트만은 이 같은 말과 함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진혼곡 중 ‘피에 주’(Pie Jesu)를 선사하며 이태원 참사를 추모했다. 두 팔이 없는 독일의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는 내한 공연의 앙코르 곡으로 생상스의 ‘로망스’를 연주하며 이태원 참사로 겪었을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를 보듬었다. 참사일로부터 한정적인 추모기간을 설정해 모든 국공시립 예술단체의 공연을 취소, 연기했던 조치 그리곤 이미 잊혀져버린 것과는 상반되는 풍경이었다.

단언컨대 ‘예술’은 위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런 예술이 세계적인 위기, 사회적 비극 등에 무조건 멈추고 취소됐던 최근 몇 년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예술은 평화로운 시절만을 위한 ‘사치’ ‘즐길 거리’ ‘유흥’이 아니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이자 치유제이며 누군가에게는 생존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랑할 때입니다…우리가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엔 못갔지만 이 앨범으로 위안받으시길 바랍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 조수미는 6일 오전 새 앨범 ‘인 러브’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그의 말대로 ‘유니버설 랭기지’이며 존재만으로도 삶의 기쁨이자 위안이다.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