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빈곤 포르노’ 모금 단체가 스스로 자정해야

권순철 기자
입력일 2022-11-29 14:24 수정일 2022-11-29 14:24 발행일 2022-11-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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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사진)
권순철 정치경제부장

깨끗한 물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 드리려고 해요.

‘먼저 흙을 조금 넣어주세요. 그리고 부패한 동물의 사체와 사람의 배설물도 넣은 후 잘 섞어 주세요. 자, 이제 이 물을 우리 아이들에게 주세요.’

이것은 세계적 NGO(비정부기구) 단체이자 구호단체인 A단체의 ‘모두를 위한 물’ 캠페인 모금 광고다. 특히 이 광고의 내레이터는 이 단체의 홍보대사인 유명 여배우다.

시청자들은 이 광고를 보는 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이런 물을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들의 아이들이 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불쌍하다는 마음부터 든다. 그리고 이들을 구호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에 기부를 결심한다.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모금 광고 수위를 보면 이 정도는 약과다. TV 채널을 보고 있으면 국내외 각종 구호 단체들이 모금 광고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한 굶주린 아이들, 다리가 잘린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보여준다. 사람뿐만 아니라 그물에 걸린 거북이나 돌고래, 북극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곰 등 동물들도 등장시킨다.

그리고 화면엔 큼지막한 후원 전화번호가 뜬다. 홍보대사로 위촉된 연예인들은 “여러분이 매달 내는 만원이 이들의 생명을 구한다”는 식으로 기부를 독려한다.

최근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빈곤 포르노’는 기부금 유도를 위해 가난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상이나 사진 등을 말한다.

일부 구호단체들이 ‘빈곤 포르노’ 광고에 유혹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구호단체들 간 모금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몇 안 되던 구호단체들은 최근 들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비슷한 목적을 갖고 활동하는 단체들도 많다. 한마디로 직간접적으로 모금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조직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또 단체들은 기부금액에서 일부를 광고비와 운영비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금은 방송광고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해당 단체의 이름을 국민(시청자) 뇌리에 각인 시키는 수단으로 방송만 한 것이 없다.

이에 따라 국내외 국호단체들의 방송 광고 집행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윤두현 의원(국민의힘)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에는 해외아동 보건의료(18억7000여만원) 등 41억3000여만원, 2021년에는 국내외 취약 아동 지원(11억4000여만원) 등 53억2000여만원, 그리고 올해 9월까지는 해외아동 영양실조 구호(18억6000여만원) 등 29억6000여만원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위해 만든 영상에 등장한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구호단체들은 그들의 동의를 받고 광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화면에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것은 어떠한 방어권도 없는 아이들의 초상권 침해소지가 있다. 때문에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는 ‘빈곤 포르노’ 광고를 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빈곤 포르노’ 광고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으로 강제 중단하기 보다는 해당 단체들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스스로 알아서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권순철 정치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