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 클래식 색소프니스트 브랜든 최 “나를 닮은” ‘라흐마니노프’ 앨범 발매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2-11-08 18:30 수정일 2022-11-08 18:30 발행일 2022-11-0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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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최
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사진제공=뮤직앤아트컴퍼니)

“그의 스승조차도 작곡가가 되기 보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길 바랐던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서 뒤늦게 인정받았어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본인이 좋아하고 애정하는 작곡에 몰두하면서 꿋꿋이 걸었죠. 힘든 과정 속에서 우울증을 앓았고 치료를 받으면서 ‘피아노 협주곡 2번’(Pianoi Concerto No.2 c minor Op.18)으로 큰 성공을 거뒀어요. 그런 부분이 저랑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8일 ‘라흐마니노프’ 앨범을 발매한 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는 “왜 색소폰을 위한 곡을 단 하나도 쓰지 않은 라흐마니노프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 역시 색소폰이 클래식 악기라는 인식이 거의 없을 때 전공을 하고 연주자로 나아가면서 쉽지 않은 길을 걸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라흐마니노프라는 작곡가의 인생이 영감을 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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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사진제공=뮤직앤아트컴퍼니)

이 앨범에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유일한 첼로소나타인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단조’(Cello and Piano sonata in g minor, Op. 19, 이하 첼로 소나타)를 비롯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두개의 소품’(Two Pieces, Op. 2), ‘보칼리제’(Vocalise, Op. 34 No. 14), ‘엘리지’(Elegie, Op.3) 그리고 ‘기도’(Preghiera Arr. by Fritz Kreisler From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18, 2nd Movement)가 수록됐다. ◇인간의 내면을 깊이 관통하는 ‘라흐마니노프’“라흐마니노프 곡들은 도스도옙스키의 ‘죄와 벌’ 등 러시아 문학이 그렇듯 접근도, 해석도 어렵지만 인간의 내면과 심리, 감정 등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좋아서 시작했는데 계속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인간의 내면, 슬픔 등을 잘 해석해낸 것이 라흐마노프의 작품들이 아닌가 싶었고 더욱더 빠져들게 됐죠. 한 걸음 한 걸음 점들을 찍어가면서 ‘라흐마니노프’ 앨범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는 “특히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그런 점을 많이 느꼈다”며 “그 동안 제가 연주한 색소폰 레퍼토리와는 다르게 각 악장만이 가진 색이 있었다. 특히 1악장이 (인간의 내면을 깊이) ‘관통한다’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첫 시작이 가지고 있는 화성들은 보통 클래식 작곡가들이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에요. 첫 시작부터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화성, 제가 연주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처음에는 해석하기 굉장히 어려웠죠. 연주하고 연습하면서 그런 (인간의 내면을 깊이 관통하는) 부분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어 브랜든 최는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는 첼리스트들도 어려워하는 곡”이라며 “이 곡의 3악장 ‘안단테’(Andante)를 만나면서 이 앨범 녹음을 하게 됐다. ‘피아노 협주곡 2번’ 성공 직후 작곡한 곡으로 콘체르토의 성향이 많이 묻어 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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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 앨범 ‘라흐마니노프’(사진제공=뮤직앤아트컴퍼니)

“두 솔로이스트가 반주자와 연주자 아니라, 두명의 솔리스트들이 콘체르토처럼 연주하길 바란 곡이라 전달력에 신경 써야했습니다. 더불어 색소폰과 발란스적으로 잘 어울어져서 색채나 질감들도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곡이죠.”

그는 “첫 트랙인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두개의 소품’은 첼로 음역대와 가장 가까운 태너 색소폰과 바리톤 색소폰으로 연주했다”며 마지막 트랙인 ‘엘리지’에 대해서는 “원곡은 피아노 솔로곡이지만 첼리스트들이 편곡해서 자주 연주하는 곡이다. 이 곡은 태너 색소폰으로 연주했다. ‘엘리지’가 가진 슬픔과 고뇌들이 태너 색소폰과 잘 어우러졌다”고 설명했다.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보칼리제’는 소프라노를 위해 작곡된 곡이지만 저는 알토 색소폰으로 해석해봤습니다. ‘기도’라는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친분을 가졌던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을 발췌해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작품으로 이 역시 알토 색소폰으로 새로 재해석했죠.”

◇무궁무진한 매력의 색소폰 “내년에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 그림’을 재해석해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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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사진제공=뮤직앤아트컴퍼니)

“1842년 벨기에의 아돌프 삭스(Adolphe Sax)가 발명한 색소폰은 그의 자부심이 담긴 악기예요. 플루트와 클라리넷 연주자이기도 했던 그는 베이스 클라리넷, 유포늄 등을 발명하기도 했는데 금관악기가 가진 웅장함, 목관악기의 부드러움, 현악기의 유연함까지를 다 갖춘 악기를 만들고 싶어서 발명한 게 색소폰이죠.”

색소폰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전한 브랜든 최는 “목관악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금관악기의 웅장함이 있고 리드 사용으로 부드러움을, 3~4옥타브까지 올라가 다양한 음역대를 구현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기본 사성부를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죠. 조성은 다르지만 조금만 공부해도 다양한 음역대와 무궁무진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악기죠. 특히 바리톤 색소폰으로는 가장 낮은 음을 표현할 수 있어요.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며 제일 매력적인 저음을 잘 만들어낼 수 있죠.”

고등학교 2학년 처음 클래식 색소폰을 접하자마자 빠져든 브랜든 최는 미국 신시내티 음악대학교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해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프랑스 리옹 국립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2016년 귀국해 클래식 색소폰 알리기와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애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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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사진제공=뮤직앤아트컴퍼니)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색소폰이 클래식 악기라는 걸 알리기도 쉽지 않았어요. 지휘자나 음악가들 조차도 (색소폰으로 연주할 수 있는) ‘클래식 곡이나 협주곡이 있느냐’ ‘오케스트라 협연이 가능하냐’고 물을 정도였죠.”

그는 지휘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악보를 보여주며 자크 프랑수아 앙투안 이베르(Jacques Francois Antoine),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등이 색소폰을 위한 콘체르토를 썼다고 알렸다. 더불어 학교를 찾아가서는 클래식 색소폰 전공을 만들어 달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색소폰을 클래식 악기로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한걸음씩 활동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 활동한) 6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지금은 클래식 색소폰을 접할 기회도 많아졌고 공연장, 대학 등 교육체계도 생겼죠. 예전에는 색소폰 협주곡 연주 기회조차 없었는데 지금은 KBS·인천·수원·천안 등 교향악단으로부터의 협연 섭외도, 오롯이 클래식 색소포니스트로 설 무대도 많아졌거든요.”

더불어 그는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의 ‘클라리넷 소나타’(Clarinet Sonatas),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오보에 협주곡 C장조’(Oboe Concerto in C Major K.314) 등 목관악기를 위해 쓴 곡들을 색소폰으로 재해석해 연주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함께 할 음반발매 기념공연(11월 24일 대한성공회서울주교좌성당)을 준비 중인 브랜든 최는 “이 공연에서 수록곡과 더불어 바로크 음악의 대표 작곡가인 바흐의 음악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그렇게 시작한 1부 마지막에는 모데스트 무소륵스키(Modest Mussorgsky)가 작곡한 ‘전람회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을 연주하기도 합니다. 이번 ‘라흐마니노프’처럼 내년에 새로운 점을 찍는다는 느낌으로 진행할 프로젝트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