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 “어떤 약점도 열정이 있다면!”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2-11-03 18:30 수정일 2022-11-04 09:07 발행일 2022-11-0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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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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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저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아무리 큰 약점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죠. 모든 약점은 강점이 될 수 있거든요. 이 사실을 안다면 한계란 없어요. 우리가 가진 한계는 스스로가 자신에게 부여한 한계뿐이죠.”  

왼손으로 음정을 조절하는 밸브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개구부(Bell)에 손을 넣어 음색과 볼륨의 미세한 변화를 조절하는 호르니스트인 펠릭스 클리저(Felix Klieser)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서면으로 진행한 펠릭스 클리저와의 인터뷰 답변에서는 정성과 선함이 어려 있었고 어려있었고 친절함과 진중함 그리고 단단함과 반듯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펠릭스 클리저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호른 연주에 양손은 필수지만 그에겐 두 팔이 없다. 호르니스트로서는 큰 약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왼발과 입술로 호른을 연주하는 그는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주 연주자로 활동 중이다. 

독일 뤼벡의 유서 깊은 페스티벌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뮤직 페스티벌이 수여하는 ‘레너드 번스타인상’(2016), 독일의 유명 음악상 에코 클래식상(ECHO Classic Prize) ‘올해의 영 아티스트상’(2014), 독일지휘자협회(The Association of German Conductors)와 리터 파운데이션이 수여하는 음악상(2014) 수상자이기도 하다. 

펠릭스 클리저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을 때 “열정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흠뻑 빠지고 흥분되는 일에는 별도의 동기 부여가 필요하지 않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일에서의 성공이란 성공의 사다리 꼭대기로 바로 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모든 일에는 순조로운 시기가 있고 삐걱거리는 시기가 있죠. 일이 잘 돌아갈 때는 동기부여가 훨씬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자신이 삶에서 진정 원하는 것이나 기꺼이 삶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해요. 인생에서의 성취는 불필요한 걸 덜어내는 일과 연결됩니다. 기억해야 할 교 훈이죠. 장애물을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기로 결심할 때 큰 보상이 찾아오거든요.”
그런 그가 한국에서의 첫 리사이틀(11월 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 나선다. 2015년 금호아트홀 연세 개관 음악제, 2018-2019년 제주국제관악제 참여에 이은 세 번째 내한 공연이다. 
펠릭스 클리저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한국 관객을 사랑해요. 한국분들은 매우 친절하고 열정이 넘치죠. 한국에 갈 때마다 너무 좋아요. 연주회에서 관객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연주회에 오시는 분들이 좋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펠릭스 클리저는 한국의 피아니시트이자 오르가니스트 조재혁과 함께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Op. 70’(Adagio and Allegro, Op. 70), 뒤카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빌라넬레’(Villanelle for Horn and Piano), 슈트라우스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안단테, TrV 155’(Andante for Horn and Piano, TrV 155), 베토벤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바 장조, Op. 17’(Sonata for Horn and Piano in F Major, Op. 17), 글리에르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작품, Op. 35’(Four pieces for Horn and Piano, Op. 35) , 라인베르거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 178’(Sonata for Horn and Piano, Op. 178)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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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이 프로그램에 대해 펠릭스 클리저는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구성했다”며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는 첼로를 위한 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호른을 위해 만들어졌다. 베토벤 ‘소나타’도 마찬가지”라고 소개했다.
 
“찾아보면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호른 작품이 놀라울 정도로 많아요. 그런 작품들을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연주하기도 하는데요. 뒤카의 ‘빌라넬레’는 6분가량의 짧은 곡이지만 그 안에 호른의 모든 개성을 담고 있어요. 즐거운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5살. 우연히 듣게 된 호른의 음색에 매료된 그는 13살이 되던 2004년 하노버 예술대학 예비학생이 됐고 3년 후 정식으로 입학했다. 2008~2011년 독일 국립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팝스타 스팅의 투어 콘서트, 베를린 필하모닉·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등의 마에스트로 사이먼 래틀(Simon Rattle)경과의 연주 등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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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언제 처음 호른을 들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분명한 건 호른을 연주하지 않았다면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는 사실이죠. 지금은 호른이 제 직업이자 제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자연 과학을 좋아했어요. 호른 연주자가 되지 않았다면 자연 과학 쪽으로 진로를 택하지 않았을까요? 늘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거든요.”

이어 “호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음색의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호른 연주자가 한 음만 연주해도 단번에 매우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털어 놓았다.
“다른 악기는 할 수 없는 일이죠. 피아노는 사랑스럽거나 무서운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는 정도예요. 저는 호른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어린 나이에 호른이라는 악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호른은 그에게 꿈이자 그가 추구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최고의 목표는 음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며 “음악을 연주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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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연주자 자신이 행복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죠. 연주를 얼마나 잘하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사람들의 삶에 기쁨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연주하는 겁니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곤 “저는 누군가의 겉모습이나 그가 이룬 성취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목표나 과정보다 결과만 바라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며 “훌륭한 독주자가 되려면 악기를 잘 연주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전할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그건 제 문제가 아니라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문제이니까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는 진짜 제 모습과 달라요. 어떠하든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가진 영향력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연주자의 목표는 훌륭한 독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악기에 최대한 통달하고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는 것이라야 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