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무현 정신’을 정치적으로만 이용 말라

사설 기자
입력일 2022-05-23 14:45 수정일 2022-05-23 14:45 발행일 2022-05-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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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에 여야 전·현직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다. 지난 18일 광주에서 열렸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이어 내노라 하는 정치인이 다시 한 자리에서 만났다. 참석자들 모두 하나 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노무현 정신’을 기렸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노무현 정신은 ‘통합’과 ‘진심’이다. 정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으나 그는 최대한 사리사욕을 억제하려 노력했고 실천했다. 자신이나 자기 당파 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더 깊이 생각했다. 그래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과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가능했다. 그는 북한 김정일과도 당당하게 악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팬덤도 설득할 땐 설득하고 때론 꾸짖기도 했다. 상식에 맞지 않으면 따르지 않았고, 지나친 정치적 해석과 과도한 편가르기를 경계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자 했다. 그것이 ‘노무현 정신’이었다. 그런데 지금 봉하 마을을 찾은 이들이 과연 그런 노무현 정신을 제대로 새기고 갔는 지 의문이다.

노무현을 그리는 많은 이들은 지금의 자칭 ‘노무현 정신 계승자’들이 ‘노무현’이라는 브랜드만 이용하려 한다고 우려한다. 정쟁에만 써먹는 ‘전가의 보도’로 여긴다는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너나 없이 봉하로 달려가 눈물 흘리며 ‘노무현’이란 이름을 팔지만, 결국 속내는 제 정치적 이익 챙기기에 불과하다며 한숨 짓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이려 했던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후보를 죽이려 해선 절대 안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대선 후보에 대한 음해와 공격, 수사가 이어지지 않으리 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는 윤색된 정치언어들이 난무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노무현 팔이’가 아니면 무엇인가.

노무현 정신의 ‘아류 계승자’들은 자신에 집착하는 정치 팬덤을 관리하고 장악하기 보다는, 이용하고 마지못해 끌려가는 듯 행동하고 있다. 그렇게 정치적 목적으로 팬덤을 과도하게 활용하고 스스로 이용당하다 보니, 어느 새 나라는 반쪽이 나고 정치판에 협치는 사라져 버렸다.

이날 노 전 대통령 추도식 주제가 ‘나는 깨어있는 강물이다’였다. 고인이 생전에 바랐던, 소통과 통합의 정신을 기리는 주제라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우르르 몰려가 표심을 구하는데 급급하는 정치인들을 고인은 과연 어떻게 보고 있을 지 궁금하다. 그래서 더더욱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 정치에 참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