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사태에 경유 이어 항공유도 '수급난' 조짐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04-11 15:16 수정일 2022-05-04 16:15 발행일 2022-04-1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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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정유 시설 (연합뉴스)

국제 정세 불안으로 석유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경유에 이어 항공유도 쇼티지(공급 부족) 조짐이 보인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뉴욕 항공유 현물 가격이 이달 4일 갤런당 7.6달러(배럴당 318.6달러)로 2주 전 3.6달러 대비 두 배 넘게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걸프만 가격이 3.8달러 수준인 만큼 뉴욕 가격의 급등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뉴욕 항공유 가격 급등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영향이며, 구체적으로는 경유 가격 상승 때문으로 진단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올해 2월 24일 이후 러시아산 경유의 유럽향 수출량이 감소하면서 국제 경유 가격을 끌어 올린 바 있다. 여기에 미국이 지난달 8일 러시아산 석유 제품을 금수하면서, 걸프만 저유황 경유 가격은 작년 평균 대비 두 배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으며 높은 수준에 형성됐다.

이에 미국 정유사들이 저유황 경유 생산 수율을 상향하면서, 지난 3월 말 기준 일 평균 경유 생산량은 7개월래 최대 수준인 481만 배럴을 기록했다. 반면 항공유 생산량은 4개월래 최저치인 하루 평균 139만 배럴로 떨어졌다. 이는 원유 정제 공정 특성상 중간 유분 가운데 특정 유종의 생산을 늘릴 경우 다른 유종의 생산량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항공유는 등유의 일종이며, 등유는 경유와 성상이 유사하다. 정유사는 생산 능력 내에서 경유와 등유의 수율을 조정하고 있다. 항공유가 과소 생산으로 공급 부족 상태에 놓이면서, 걸프만 항공유 가격은 3월 24일 이후 저유황 경유 가격의 고점까지 추월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항공유 수요가 급속하게 회복되고 있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항공유 공급을 늘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주요 10개 산유국)는 다음 달에도 기존 원유 증산 계획을 고수하겠다고 결정했고, 미국 정유 설비들은 가동률이 92.5%까지 상승해 생산 증대 여력이 없다.

항공유의 낮은 재고 수준과 수입량 감소도 수급난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 2019년 뉴욕항의 연간 석유 제품 수입량은 360만 배럴 가량이었으나 2020년에 718만 배럴, 2021년에는 1116만 배럴로 급증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수입량은 단 30만 배럴에 불과해 전년 동기 125만 배럴 대비 매우 저조했으며, 단기간 내 예정된 수입 물량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 에너지 정보청에 따르면 3월 마지막 주 기준 미 동부 항공유 재고는 763만 배럴로, 최근 2개월 중 최저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러시아 제재로 경유 공급이 줄어든 반면, 글로벌 경기 회복 및 항공편 수 증가에 따라 경유·항공유 수요가 늘고 있다”며 “중간 유분 공급 부족이 향후 유가 변동성을 가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 경유·항공유 쇼티지와 유럽 석탄·천연 가스 수급난 등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순환 참조’ 되는 모습으로, 연결 고리를 끊지 못하면 반도체 공급난보다 심각한 에너지 대란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민규 기자 minq@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