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 래리 피트먼이 전하는 “그럼에도 인류의 근미래”는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2-03-19 13:00 수정일 2022-03-19 13:00 발행일 2022-03-19 99면
인쇄아이콘
래리 피트먼
리만 머핀 서울 재개관전인 래리 피트먼의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 중 ‘Luminos: Cities with Egg Monuments’3(왼쪽)과 1(사진=허미선 기자)

“그럼에도 인류의 가까운 미래는 발광하는 힘의 원천들로 낙관적이고 희망으로 충만할 것이다. 오랜 시기를 거쳐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도 희망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인류사가 그랬듯.”

유례없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년 간 고통받고 불안한 삶을 이어온 이들에게 래리 피트먼(Lari Pittman)은 “희망과 낙관 그리고 빛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제목부터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5월 7일까지 리만머핀 서울), 안국동에서 한남동으로 확장 이전한 리만머핀 서울이 재개관전 작가로 래리 피트먼을 선정한 이유다. 더불어 김정연 리만 머핀 디렉터의 말처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40년 넘게 활동하신, 작가로서 입지가 대단한 분이시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래리 피트먼
리만 머핀 서울 재개관전인 래리 피트먼의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김정연 디렉터는 래리 피트먼에 대해 “복합적인 장식 요소들을 다양하게 배치하는 전무후무한 작업들로 마니아들을 양산했지만 한국에서는 알려질 기회가 많지 않았던 작가”라며 “199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휘트니비엔날레 서울 그룹전, 아모레퍼시픽 소장전이 전부”라고 전했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젊은 건축가상 수상 기업 에스오에이(SoA, Society of Architecture)가 리노베이션한 리만 머핀 1층과 2층에 걸쳐 전시 제목인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을 표현한 신작 18점들이 순차적으로 전시돼 있다.

어시스턴트도, 밑그림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그려내는 래리 피트먼의 작품들은 알, 깃털, 도시풍경과 원주민 천막, 꽃과 나뭇잎, 빛과 총 그리고 인간이지만 인물로 보이지 않는 생명체 등 상징적인 기호와 기표들을 중첩해 인간의 본성과 인류 역사 그리고 지금 우리를 표현해 낸다.

래리 피트먼
리만 머핀 서울 재개관전인 래리 피트먼의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김정연 디렉터는 “대도시는 지리학적, 지역적 의미라기보다 마천루, 밀집한 인구 등 비슷한 유형”이라며 “전례 없는 오랜 팬데믹 기간에도 생동적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던 대도시도 숨기는 것들이 많다. 그렇게 숨어서 힘들었을 많은 이들에게 알, 도시의 빛 등으로 가까운 미래를 희망적으로 제시하고 싶어하셨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알에 모계사회, 창조, 삶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오래 전 커밍아웃을 했지만 (성 정체성 등)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사람은 결국 수정란을 통해 나오잖아요. 알과 더불어 빛 역시 (래리 피트먼의) 상징적인 요소예요. 빛은 항상 존재하진 않지만 찰나에 갑자기 생겨나 발광하죠. 그런 빛을 통해 어둡고 힘든 시기가 있어도 어느 순간 변할 수 있음을 얘기하고 있어요.”

2002년부터 인간처럼 보이는 생명체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이 요소들은 이번 신작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목구비, 팔다리 등의 모양새는 인간인 듯 보이지만 곤충 혹은 낙엽, 나무껍대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인물들은 미국 식민사 속 제국주의, 원주민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성의 상징이다. 어쩌면 산업화와 빠르기만한 기술의 발전에 파묻혀버린 인류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래리 피트먼
리만 머핀 서울 재개관전인 래리 피트먼의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자칫 어둡고 디스토피아적으로 내달릴 수 있는 작품들은 늘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알, 순간적이지만 분명 발광했던 빛,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꽃 등을 중첩시키며 ‘희망’을 제시하고 ‘유토피아’를 꿈꾸게 한다.

김정연 디렉터는 이번 전시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작품으로 1층의 대규모 연작인 ‘루미노스: 시티스 위드 에그 머뉴먼츠’(Luminos: Cities with Egg Monuments) 1, 3을 꼽았다.

“결국 근미래에 대한 가장 희망적인 작품이에요. 도시 풍경이지만 중세 성당의 성화같은 느낌의 작품이죠. 중심의 알은 작가가 말하는 여성, 삶을 상징하지만 그 뒤로 중첩된 다양한 요소들이 저마다의 의미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