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뷰] '수포자'도 이해하는 '공식'을 담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22-03-09 12:58 수정일 2022-03-09 13:59 발행일 2022-03-09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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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사진제공=쇼박스)

제목대로 참 ‘이상한 영화’다. 9일 개봉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포기자도 기본공식을 연상하게 만드는 마력과 손가락을 두드려 피아노 리듬을 타게 만든다. 숫자의 아름다움을 피아노 연주로 만든 ‘파이(π) 송’은 개봉전부터 묘한 중독성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여기에 대한민국 공교육이 가진 문제점과 사교육에서 판치는 비리가 맞물려 묘한 쾌감까지 자아낸다. 북한에서 넘어온 천재 수학자와 평범한 남한 고등학생의 만남은 ‘휴전상태’인 대한민국의 상황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절대 어울리지 않는 상황들이 어우려져 마법을 일으키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드라마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신분을 감추고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 학성(최민식)은 수재들만 모이는 학교 기숙사에서 술셔틀을 하던 지우(김동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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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예정작 순위 1위에 오르며 기대작으로 떠오른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사진제공=쇼박스)

동조자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은 벌로 한 달 간 퇴소 조치가 내려지고, 가난한 형편으로 집으로 갈 수 없던 지우는 비오는 밤 경비실에서 하룻밤을 신세진다.

아이들에게 북한 출신이란 이유로 인민군으로 불리는 학성은 무뚝뚝하고, 주변의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같은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냉철하고 계산이 칼 같기로 유명하다. 중학교때 남다른 수학 실력으로 날고 기었던 지우는 천재들만 모인 학교에서 그저 내신을 깔아주고 있는 상황.

부모들의 재력을 발판 삼아 개인과외와 그룹 레슨을 하는 반 학생들에게 그는 존재감이 없는 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행학습으로 3학년 진도를 모두 마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서울대를 몇 명 보냈는지가 명문고의 기준이 된 시대라 지우같은 평범한 아이들은 일반고로 전학시키는게 담임의 몫이 됐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전개방식은 과하지 않다. 학성이 덜컥 지우를 받아주지도, 그렇다고 쪽집게 과외처럼 수업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딸기우유 한 개를 받고 성적에는 상관없는 ‘숫자와 친해지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것보다 정답을 찾아가는 길고 긴 과정을 기꺼이 걷게 만드는 것. 달달 외운 공식에 대입하면 바로 푸는 문제를 손으로 몇 시간씩 풀게 만드는 학성과 머리보다 진득하게 엉덩이로 계산해 나가는 지우는 어느새 스승과 제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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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역시 박병은이 맡았다.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담임선생님의 양면성을 날 것 그대로 파닥거리게 만든다. (사진제공=쇼박스)

영화의 극적인 요소는 눈치빠른 관객이라면 알아차리겠지만 당연히 남북이념이다. 자신의 수학능력이 그저 무기를 만드는데 쓰이기 싫었던 천재 수학자는 행복할 줄 알았던 이 곳에서 일용직을 하며 근근히 살아간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아들이 더 많은 자유와 기회를 가지길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들은 북한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던 아버지의 변한 모습이 싫고 탈북자라고 차별하는 남한의 아이들이 증오스러울 뿐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수학계에서 최고난도 문제로 손꼽히는 리만가설을 증명한 사람이 학성임이 드러나고 갈등의 정점을 맞는다. 북한은 즉각 학성의 불법납치설로 한국을 궁지로 몰고 이에 안기부는 학성을 미디어에 등장시켜 자의에 의해 민주주의 사회에 안착한 모습을 보여주러 발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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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사진제공=쇼박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일관되게 유지해온 훈훈함이 갑자기 신파로 빠지는 것도 이 즈음이다. 교내에 기말고사 대신 대체된 경시대회에서 문제 유출이 제기되고, 희생자로 지우가 전학을 가기로 한 상황에서 모습을 감췄던 학성이 등장해 눈물과 감동을 쥐어짠다.

 

프랑스 풀 코스 만찬을 즐기다 디저트로 달콤한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을 예상했는데 갑자기 소보루 빵이 나온 모양새다. 다행히 그 소보루 안에 기대 이상의 슈크림이 가득 차 있어서 용서되는 상황이란 것쯤만 알려둔다. 그 달콤함을 채우는건 배우들의 힘이다. 김동휘, 박보람이 보여주는 존재감은 선배 박병은, 박해준의 믿고보는 연기에 준한다. 학성 캐릭터는 최민식을 대체하는 인물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12세 관람가.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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