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작소] 만화, 오밀조밀 색점들로 예술이 되다!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2-02-19 14:00 수정일 2022-02-19 14:00 발행일 2022-02-19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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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두터운 검은 테두리, 말풍선, 선과 면의 재배치 등과 구멍이 뚫린 판을 활용해 오밀조밀하게 그 안을 채운 알록달록 색점들. 번데이점(Benday Dot)이라 불리는 이 기법을 탄생시킨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개인전(4월 3일까지 한화갤러리아 포레)이 한창이다.

스페인의 아트컬렉터 호세 루이스 루페레스(Jose Luiz Ruperez) 컬렉션(Luiz Ruperez & Slivia Serrano) 컬렉션으로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중국 16개 도시 등에서 200만여명의 관람객을 만난 전시다. 그 전시의 29번째 투어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단독 전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번데이점과 스텐실 기법으로 표현된, 언뜻 신문에 실린 만화 같기도 한 그림체 면면에 담긴 그만의 익살, 생생한 색채, 날 선 풍자 등을 만날 수 있다. 번데이점은 1950~1960년대 만화책을 인쇄할 때 잉크를 아끼기 위해 사용됐던 기법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프린팅 작가인 벤야민 데이 주니어(Benjamin Henry Day .JR)가 1879년 이름을 붙였다.

“아빠는 저 그림만큼 잘 그리지 못하죠?”(I bet you can’t paint as good as that, eh, Dad?)

아들의 이 말에 미키마우스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이것 좀 봐 미키’(Look Mickey, 1961)를 그리면서 리히텐슈타인은 주목받지 못했던 화가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로 급부상했다. 1962년 뉴욕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 갤러리의 개인전에서 그의 작품이 완판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리히텐슈타인은 기계적 작업으로 표준화된 공정을 거치는 번데이점 기법을 활용해 아티스트로서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당시 사랑과 전쟁을 소재로 했던 만화 형식과 기법 등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과장된 표현법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추상표현주의 등 당시 유행하던 순수미술에 냉소를 보내고 대중들이 열광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예술’임을 주창하기도 했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절망’(Hopeless, 1963), ‘음 어쩌면’(m-maybe, 1965), ‘행복한 눈물’(Happy Tears, 1964), ‘Whaam!’ 등 리히텐슈타인의 대표작들을 비롯한 1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그들 중에는 파블로 피카소, 피에트 몬드리안,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오마주 작품, 1988년 서울올림픽 포스터로 출전했지만 채택되지 못한 제24회 올림픽 포스터, 동양의 수묵화를 번데이점으로 표현한 작품들, 그가 디자인한 식기, 프랑스 국민 만화의 주인공인 틴틴과 화가 앙리 마티스의 ‘춤’을 한 화면에 배치한 ‘틴틴의 독서 포스터’(Tintin Reading Poster, 1995) 등도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탐구했던 그는 당시 온전히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팝 아트에 대한 논란을 비롯한 사회 풍자에 만화, 포스터, 식기류 등 주변의 것들을 매개로 활용했다. 

스스로 “나는 상투적인 것에서 대단함을 이끌어낸다. 대부분 그 둘의 차이는 사소하지만 아주 결정적”이라고 평한 그의 작품들은 일상을 예술로 유입시켰다. “오늘날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는 그의 선언처럼.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 중 1988년 서울 올림픽 포스터(사진=허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