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작소] 반가사유상과 함께 하는 ‘사유의 방’…더 나아가기 위한 멈춤 혹은 디딤 그리고 사유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1-11-13 15:00 수정일 2021-11-13 16:57 발행일 2021-11-1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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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장 2층에 꾸린 ‘사유의 방-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에 전시된 국보 제78호(왼쪽)와 제83호 반가사유상은 상반된 모양새를 하고 있다(사진=허미선 기자)

“한쪽 다리를 다른 한쪽 다리에 얹는 ‘반가’라는 자세는 멈춤과 나아감의 찰나라고 할 수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시관 2층에 마련된 ‘사유의 방-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하 사유의 방)에 전시된 두점의 국보 반가사유상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 미래전략담당관의 신소연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반가좌(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를 풀고 한쪽 다리를 내리려는 것처럼 혹은 다른 쪽 다리를 돌려 결가부좌(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넓적다리 위에 엇갈리게 얹는 참선 방법)를 틀고 명상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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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장 2층에 꾸린 ‘사유의 방-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바닥과 천장, 벽이 만나는 지점으로 향하는 전시실은 현실의 원근감이 사라진 초현실적인 공간이다(사진=허미선 기자)

신 학예연구사의 전언처럼 ‘가좌’는 더 나아가기 위한 사유를 위한 멈춤 혹은 사유를 마치고 나아가기 위한 디딤,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가좌가 반대되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사유의 방’에 전시된 국보 제78호와 제83호 반가사유상도 상반된 모양새를 하고 있다.     

6세기 후반의 제78호는 세밀하게 묘사된 얼굴, 미소, 양갈래로 땋은 머리 등과 날렵한 천의 날림, 화려한 장신구에 비해 반가 자세를 한 하반신은 차분한 옷주름 등으로 정돈돼 있다. 

반면 7세기 전반 작품인 제83호는 단순한 복안, 장신구, 민머리, 노출된 상반신 등에 비해 하반신의 옷주름은 율동감이 넘친다. 제78호가 화려하면서도 절제됐다면 제83호는 간결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모양새로 두 상 모두 위아래가 대비되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이 공간에 ‘사유의 방’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 대해 신소연 학예연구사는 “나만의 경험을 갖는 것이 요즘 중요한 트렌드”라며 “나의 경험, 나의 여정을 만들어드리기 위해 공간과 반가상을 묶는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문을 열었다.“반가사유상의 키워드는 ‘반가’ ‘사유’ ‘미소’예요. 이 모든 걸 아우르는 키워드가 ‘사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반가라는 자세도, 미소도 사유 때문에 나오거든요. 이에 재미없고 고루하다고 생각되는 반가사유상을 건축, 미디어아트와 엮어 저마다의 공간 경험을 하실 수 있도록 했죠.”

신 학예연구사의 설명처럼 ‘사유의 방’은 건축가인 최욱 원오원 아키텍스 대표, 프랑스의 미디어아트 작가 장줄리앙 푸스와 협업해 꾸렸다. ‘사유의 방’ 입구 안팎에는 장줄리앙 푸스의 ‘순환’이라는 5분(내부), 3분(외부)짜리 미디어 아트 영상이 자리잡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직접 실사 촬영한 이미지들을 기획·구성해 얼음, 물, 기체 등으로 끊임없이 순환되다 우주로 확장되는 섭리를 표현한 영상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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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장 2층에 꾸린 ‘사유의 방-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입구에 설치된 장줄리앙 푸스의 ‘순환’(사진=허미선 기자)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 중인 장줄리앙 푸스는 ‘순환’을 통해 산등성이, 흐트러지는 구름, 공의 개념 등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정서와 세계, 더 나아가 우주의 섭리를 아우르고자 했다. 

그는 “공은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라 영원히 실재하는 게 없다는 의미”라고 밝히기도 했다. 신소연 학예연구시는 “자연의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는, 우주의 섭리를 담은 작품으로 우주에서 우리는 티끌 같은 존재임을 보여주는 영상”이라며 “안의 영상을 보시고 밖의 것을 보시기를 추천한다”고 귀띔했다. 

439㎡ 규모 전시장의 내부는 착시효과로 현실의 원근감이 사라진 초현실적인 공간이다. 흙과 계피, 편백 등 친환경소재들로 바른 붉은 벽, 경사 1도 기울기의 바닥과 천장이 만나는 지점에 두 개의 반가사유상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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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장 2층에 꾸린 ‘사유의 방-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에 전시된 국보 제78호(왼쪽)와 제83호 반가사유상(사진=허미선 기자)

각 반가상의 머리 위에는 원형 모양의 조명이 설치돼 있는데 신 학예연구사 전언에 따르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무한대(∞) 모양을 띠고 있다. 그곳의 반가사유상이 관람객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관람객들은 그들과의 눈 맞춤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저마다의 사유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공감과 힐링, 치유가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에 두 상을 함께 전시하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서는 문화재와 미디어 작가, 건축가와 협업하는, 지금까지 안해본 새로운 시도들을 한 이 공간에서 저마다가 좋아하는 것, 감상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즐기고 가시면 좋겠어요. 이후로도 이 같은 공간 전시는 계속 될 예정입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