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무차별적 손가락질, 무엇을 위함인가요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1-10-18 07:20 수정일 2022-05-22 18:52 발행일 2021-10-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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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혐오, 원인 찾아야 해법 보인다

‘혐오’와 ‘차별’이 빠르게 우리 사회의 보편화된 관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에 더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이전투구 등이 겹치면서 이제는 혐오의 대상을 특정하고 집단으로 공격해 혐오를 더 키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상대를 정해놓고 하는 공격이기에 때로는 그 혐오의 대상이 다시 혐오의 주체가 되어 또 다른 혐오를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 내의 이른바 ‘비뚤어진 공감’ 속에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타의 감정이 재생산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근원에는 나 혹은 내가 속한 집단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본능적으로 막아보려는 ‘방어 기재’의 선제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티앤씨재단이라는 곳에서 최인철 서울대 교수 등 각계 전문가들과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라는 주제로 우리 사회의 혐오 현상에 관한 실증적 토론을 펼쳐 관심을 모았다. 이 내용은 <헤이트 Hate>라는 이름의 책으로도 소개되었다. 어느 덧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의적 혐오’를 어떻게 뿌리칠 수 있을지 전문가들의 해법을 들여다 본다. 

◇ 지나친 자존감과 생존·공감이 만드는 ‘혐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생존이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이 잘못 작동되어 생긴 파편이 혐오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감의 부재 혹은 결핍의 결과물로 혐오가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이 혐오받아 마땅하다는 인식을 갖는다. 그래서 ‘홀로코스트’ 같은 극단적인 혐오가 생긴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그러면서 “혐오와 공감은 동전의 양 면”이라고 말한다. ‘공감’이 이타적 행위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오히려 우리가 원치 않는 혐오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혐오를 줄이려면 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내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자성적 노력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국가나 지배권력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문제였는데 지금은 일반대중이 혐오에 동참하는 양상인 것이 다르다”고 말한다. 2010년부터 이주자나 이주 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거나 반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갑자기 늘었고 특히 2012년 ‘일간베스트’가 등장하면서 소수자 혐오를 놀이화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는 “어느 덧 우리 사회에도 혐오가 일상화된 게 아니냐”며 우려를 표한다.

홍 교수는 우리 사회에 혐오가 만연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우선 경제사회적 요인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재난과 전쟁 감염병 등 공동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누군가에 책임을 지우려 혐오가 확산된다는 것이다. 미디어 환경도 가짜뉴스나 음모론이 빠른 속도로 퍼지는 데 한 몫 한다. 정치 지형도 한 원인이다. 정치가 취약하면 포퓰리즘이 득세해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으로는 집단주의 문화나 민족중심주의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 혐오가 확산되기 쉽다고 말한다. 그는 “혐오의 핑계거리와 희생양을 찾기 보다는 해결해야 할 원인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혐오의 전염성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혐오의 전염이 갖는 위험성을 지적한다. 그는 ‘감정 전염’은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어 집단성을 띄는데다 부정적 감정의 전염력이 긍정적 감정보다 훨씬 강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직관적인 반응에 기초하는 ‘원초적 혐오’를 근절하기는 힘들지만, 특정 집단에 투사하는 ‘투사적 혐오’는 공정한 사회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계한다.

김 교수는 인터넷이 혐오의 온상이 된 이유를 ‘침묵의 나선모델’과 ‘연쇄하강 효과’로 설명한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 지배적 사회 여론과 일치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침묵하게 되는데, 그 결과 소수의견은 점차 묵살되는 ‘침묵의 나선’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쇄하강’ 효과는 앞선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온라인 혐오에 맞서는 대안으로 ‘대항표현’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온라인상에서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필터 버블 이나 확증 편향이 강화되는 만큼, 객관적 사실을 주장하고 상호 주관적 규범 및 가치의 정당성을 말하고, 차별적 혐오표현의 부당함을 드러내고 되돌려주는 대항표현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온라인 댓글을 통한 ‘혐오 번식’에 크게 우려를 표했다. 온라인상의 과격한 표현이나 욕설, 인신공격, 증오발언 등은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혐오를 당연시 여기게 되는 ‘혐오에 대한 둔감화’도 지적한다. 그는 뉴스 댓글이나 소셜 미디어의 다양한 포스팅 혹은 댓글들이 우리 현실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자기 의견이 소수라고 생각해 입을 다물면 결과적으로 그런 의견은 실제 소수의견으로 전락한다고 강조한다. ‘침묵의 나선모델’이다. 그래서 이제는 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공개적인 연대와 지지 표현이 중요해 졌다고 강조한다. 혐오와 증오발언에 동의하지 않으며, 적극 반대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해야 혐오발언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점잖은 댓글이 사회적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우리도 극복해야 할 심각한 혐오 ‘인종주의’

최호근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가 모르는 ‘홀로코스트’를 얘기한다. ‘숨겨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로 집시와 장애인들을 언급한다. 나치 시기에 죽은 집시가 22만 명이며 이 가운데 독일 내 희생자만도 4만 명에 이른다고 전한다. 유대인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이어졌지만 집시들은 배제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목숨을 잃은 장애인들도 7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최 교수는 혐오의 대명사인 홀로코스트의 책임 소재와 관련해 “독일 국민 모두의 책임”이라고 단언한다. 1932년 총선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에 44%를 몰아주어 제1당을 만들어 준 것도, 1935년 뉘른베르크 나치당 전당대회에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유대인이면 유대인이라고 구분하는 ‘인종차별법’을 통과시킨 것도 그들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독일인들은 그 누구들과 달리 지금은 기념물로, 법으로, 배상과 보상으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로 자신들의 과오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한건수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혐오로 가득찼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차별과 학대에서 치유와 회복으로 혐오를 극복한 사례를 들며  인종주의에 관한 우리의 편견을 지적한다. 박해 받던 넬슨 만델라가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인종차별 역사의 고리를 끊자면서 1996년에 투투 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구성해 고백-용서-배상의 원칙을 정한 것을 상기시킨다.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회복적 정의’에 둔 것이다. 

한 교수는 비극적 내란과 학살을 통합의 계기로 만든 르완다의 사례도 소개한다. 투치와 후투 두 민족 간 내전으로 대학살이 일어났지만    최근 집권한 투치족 무장세력 ‘르완다 애국전선’은 보복 대신 화해를 택했다. 국내 관련자들은 전통관습법정에 회부해 고백과 최대한의 배상 원칙으로 ‘공동체 회복’을 꾀했다. 학살이 자행됐던 4월~7월을 추모기간을 정해 역사적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다짐했다. 현재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정부와 공무원 부패를 열심히 해결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전진성 부산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인종주의는 근대 유럽 식민주의 산물”이라며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서양 근대문명이 만들어낸 각종 이분법, 선진국 대 후진국, 우월함 대 열등함,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려면서 “인간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동등하다”고 말을 맺는다.

많은 전문가들도 얼마 전 불거졌던 난민 문제나 다문화가족 문제 등 우리 사회에 어느 덧 자리잡은 또 다른 인종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더욱이 초저출산 국가에 직면한 우리로선 해외 이민자들의 수용 문제를 심각하고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