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교리에 반하고 실리도 없는데… 스포츠 왜 해?

권기철 객원기자
입력일 2021-08-23 07:20 수정일 2021-08-23 07:20 발행일 2021-08-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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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철의 젊은 인도 스토리] 올림픽과 인도 스포츠 (하) 국제 성적 부진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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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계 무대에서 인도의 부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국가 크기와 역량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진다.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는데 이는 동남아 4개국(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은 물론 대만 보다 못한 결과였다. 아시아권으로 좁혀도 여전하다.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개최국인 인도네시아는 물론 우즈베키스탄이나 대만보다 적은 69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면 13억 이상의 거대한 인구를 보유한 인도는 왜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 선수권 대회 등 국제 스포츠무대에서는 항상 부진할까? 화성에 우주선을 보낼 정도의 우주개발 강국, 기초 과학이 탄탄하고 IT 산업이 크게 발달한 인도에서 스포츠 발달의 가장 큰 장애 요소는 아이러니하게도 ‘돈’이다. 한 마디로 선수를 키울 돈이 없는 것이다.

과거 동계올림픽 루지 종목에 두 차례 출전한 시바 케사반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출전비용을 마련해 간신히 2014년 소치 올림픽에 출전했다. 지원금이 부족해 훈련도, 대회 출전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이러한 환경은 인도 선수 전체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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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인가가 많은 스포츠 카바니. 인도 고유의 스포츠들이 적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지원이 크개 못미쳐 국제 대회 성적은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인도대사관공삭 블로그

인도에는 루지 시설이 없다. 썰매 바닥에 바퀴를 달아서 히말라야 도로에서 자동차와 화물차를 추월해 100km의 속력을 내는 연습을 했다. 한마디로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의 봅슬레이 출전을 다룬 영화 ‘쿨러링’의 인도 실사판이다. 후원을 받기 위해 100개 이상의 기업을 찾아 다녔지만 그는 끝내 후원을 얻어내지 못했다.

스포츠 선진국의 경우 어릴 때부터 선수 선발과 훈련을 위한 적절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여유가 ‘자본’에서 나온다. 이는 민간 기업의 영역이 아닌 정부의 영역과 역할에 해당된다. 인도 올림픽위원회의 입장을 들어보면, 인도의 나쁜 경기력은 단지 불충분한 지원 때문만은 아니라 스포츠가 정부의 최우선 현안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사실 인도에서 스포츠는 항상 교육에 밀린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려면 어린 선수들을 꾸준히 발굴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가능하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자녀가 스포츠선수로 성장하는 것을 크게 반기지 않는다. 인도 부모들은 아이들이 커서 올림픽 선수가 되는 것보다는 의사나 엔지니어 등 전문직의 길을 가길 바란다. 스포츠가 가계에 도움을 줄 정도의 수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스포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원래 인도는 스포츠 육성을 국책으로 하는 문화 자체가 없다. 즉, 한국의 태릉선수촌으로 상징되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국가 차원의 프로그램이 없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과거 소련(러시아)와 동독, 중국이 국위 선양의 일환으로 스포츠 진흥을 도모해 왔다는 것과는 사정을 달리한다. 사실 인도에서는 초등 및 중학교 수업에 체육(운동)이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고 관심 있는 아이들은 각각의 스포츠 클럽에 들어가 즐기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부유한 가정의 아이가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에 익숙해 질수 없다. 특히 수영 등은 클럽 자체가 적고, 유력 선수가 자라는 환경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아이러니하게 고급 스포츠에 해당하는 테니스와 승마 클럽은 많지만, 이 역시 동호회 수준에 부자들의 사교 모임 성격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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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 포스터. 2018년에 우라즈 발 감독이 제작한 영화로, 인도 양궁 선수 디피카 쿠마리가 여성 스포츠인에 대한 편견에 맞서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자료=넷플릭스
중학교나 고등학교 등에서도 학교 스포츠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스포츠는 어릴 적 경험이 무척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팀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인도 상황은 그렇지 않다. 공립학교에서는 수영장과 체육관 등이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구조적으로 우수한 선수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도 학교 교육에 관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는 비영리 단체 NPO의 ASER 센터가 2018년에 농촌 공립학교 약 1만 60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포츠 시설 조사에 따르면, 인도 학교 가운데 체육 수업이 있는 학교는 전체의 62.9%에 그쳤다. 전임 체육 교사가 있는 학교는 16.5 %에 불과했다.

인도 정부는 2018년 이후 학교 시설 개선과 체육 교원의 증원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성과가 나올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종교’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종교는 건강 증진은 강조하지만 우열을 겨루는 스포츠는 종교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문화다. 종교적으로 신체접촉을 꺼리는 문화와 더불어 여자의 경우 피부를 노출하는 스포츠는 금기시 되고 있다.

이 영향으로 수영 등의 경우에는 여자 선수가 성장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사격이나 양궁 등은 피부를 노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자 선수도 많지만, 어린 시절에서 즐기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유력 선수를 배출하기 힘든 형편이다.

또한 뿌리 깊은 카스트 제도가 인도 스포츠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카스트 제도는 피부색이나 직업에 따라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나뉘고, 최하층 계급으로는 불가촉천민이 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 아래서는 계층이 다르면 함께 모여 스포츠를 즐길 수 조차 없다. 더욱이 인도 인구 대부분이 낮은 계층에 속해 있고 이들은 거의 모두가 영양이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따라서 스포츠에 참여할 기회를 잡기가 근본적으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 강국인 중국처럼 스포츠를 통해 구미 열강을 극복하겠다는 뚜렷한 목표도 없다. 인도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특히 스포츠 관련 기관과 단체가 안고 있는 권위적인 문화와 부패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 스포츠계는 전반적인 투자 부족과 더불어 부패가 뿌리 깊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인도 올림픽위원회의 행정을 살펴보면, 올림픽에서 성과를 꼭 거둬야겠다는 절박함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도 올림픽위원회 관계자들도 올림픽은 이국에서 장기 휴가를 취할 구실로 생각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그들의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료로 사라지고 있다. 정작 중요한, 선수를 지원하기 위한 지출은 늘 뒷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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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리우올림픽에 참여했던 여자 기계체조 유망주 디파 카르마카르. 인도 당국의 지원 부족으로 도마 결승에서 4위에 그쳐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사진 = 힌두스탄 타임즈

온라인 잡지 ‘인도 쿼츠’에 따르면 인도 올림픽위원회가 물리 치료사를 대동하고 참석하려고 했던 선수단의 요청을 낭비라고 판단해 전액 삭감한 적이 있다. 인도에서는 유명한 사례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 참여했던 여자 기계체조 도마 결승에서 메달 유망주였던 디파 카르마카르는 당초 리오 올림픽 참석 전에 “물리 치료사의 대동을 원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예상을 깨고 인도 최초로 체조에서 역사적인 결승 진출이 결정되면서 인도 올림픽위원회는 크게 당황했다. 그제서야 물리 치료사를 현지로 급파했지만 결승 경기는 이미 시작한 뒤였다. 결국 그녀는 인도 독립기념일에 열린 결승 경기에서 4위의 성적을 거두는데 그치며 인도 국민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인도가 3년 후 열릴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서 더 많은 메달을 획득하고 싶다면, 인도는 현재의 강점을 살리고 여자 선수의 중점 강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인도 당국의 태만과 사회적 편견 극복도 과제로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남자에 비해 능력과 배짱이 있는 여자 선수들이 남자 선수보다 올림픽 수준의 기술을 습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특히 인도의 주류가 아닌 소수 민족, 금기가 많은 힌두교와 이슬람교도가 아닌 다른 종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선수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권적인 대우를 중시하거나 베테랑 선수만을 애지중지하는 풍조에 종지부를 찍을 필요도 있다는 주문도 뒤따른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이전에 가장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은 것은 베테랑 선수 뿐이었고 한다. 지명도가 낮은 젊은 선수들은 메달 획득자를 포함해 지원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베테랑 선수는 실적이 있어도 비교적 나이가 많고, 자존심도 강한 경우가 많다. 2016년 리우에서 메달 종목으로 기대를 모았던 인도 대표 테니스 선수들은 서로 서로 매우 사이가 나빴다. 그 결과 복식 경기에서는 어이 없는 경기력으로 주저 앉아 버렸다.

그러나 인도에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 문화를 키우는 것이다. 첫 걸음은 학교 및 스포츠 시설 투자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소득 및 지역에 맞는 스포츠 진흥에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뉴델리 인근 하리아나주는 전통적으로 레슬링이 번성한 곳이다. 과거의 올림픽 선수 대부분이 이 지방 출신이다.

문화적, 제도적, 생활방식 등을 고려해 인도에 맞는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하키와 레슬링을 제외하면, 인도인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민첩성, 유연성, 집중력이 요구되는 종목이 특기다. 예를 들면 배드민턴이나 사격, 체조 등이 그렇다. 인도는 이들 종목에서 상대적으로 격렬하게 접촉하는 종목들에서 보다 많은 메달을 획득해 왔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도인들도 대부분 알고있다. 인도 스포츠 중흥을 위해 지금 인도에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행동’이다.

권기철 국제전문 객원기자 speck007@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