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당시엔 고물? 지금은 보물?… 누가 인사동에 '유물'을 묻었나!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21-07-01 18:00 수정일 2021-07-01 18:00 발행일 2021-07-0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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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Talk] 인사동서 금속활자 등 무더기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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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연합)
서울 인사동 땅 속에서 조선 전기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인사동 79번지 발굴조사를 진행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을 비롯한 물시계 부속품 주전, 일성정시의, 화포인 총통(銃筒) 8점, 동종(銅鐘) 등을 찾아냈다고 29일 밝혔다.
발굴된 장소는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 견평방에 속한다. 주변에는 관청인 의금부와 전의감을 비롯해 왕실의 궁가인 순화궁, 죽동궁 등이 위치해 있고 남쪽은 상업시설인 시전행랑이 있었던 운종가 자리다. 출토유물 조사 결과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의 총 6개 문화층(2~7층)이 확인됐다.
각종 건물지 유구를 비롯해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도 같이 발견됐다. 특히 1600여점이 출토된 금속활자는 한자(1000여점)와 한글(600여점)을 아우르고 있으며 이제껏 인쇄본으로만 전해지던 초창기 훈민정음 음운 활자 실물로 발굴됐다.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조선 전기 활자인쇄 문화 연구를 급진전시킬 역대급 유물로 평가된다.
기록으로만 전하던 조선 전기 과학유산이 대규모로 발굴된 것도 처음이다.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1점과 중종~선조 때 만들어진 총통(화포)류 8점 등도 같이 발견됐다. ‘일성정시의’는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했던 기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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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는 “‘일정정지의’는 이미 35년 전 영국에서도 당대 세계 최고의 기술로 인정한바 있는데 ‘세종실록’ 등 기록으로만 전해져 왔다”며 “이번 발굴로 그 실체를 엿볼 수 있어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물 매장 상황을 봤을 때 누군가가 금속품을 모아 고의로 묻었고 나중에 녹여서 다른 물건으로 만드는 ‘재활용’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도기 항아리를 기와 조각과 작은 돌로 괸 것을 보면 인위적으로 묻은 정황을 알 수 있다”며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화포인 소승자총통이 1588년에 만들어져 가장 늦은 편인데 1588년 이후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묻었다가 잊혀져 다시 활용되지 못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 원장은 “아직 성분을 분석하지 못했지만 색만 봐도 순동에 가깝다”며 “조선시대에 동 자체가 귀한 재료고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지역 관련 조선 전기·후기 자료들을 아무리 살펴도 관청·궁과 관련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자료로 더 연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다. 문화재청은 “이 유물들은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해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며 “앞으로 보존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 각 분야별 연구가 진행된다면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전기, 더 나아가 세종 연간의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