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어쩌면 지금 우리, 국립창극단 ‘귀토-토끼의 팔란’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1-06-02 18:30 수정일 2021-06-02 19:20 발행일 2021-06-0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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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oard] 수궁가 재해석한 '귀토-토끼의 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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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귀토-토끼의 팔란'(사진제공=국립극장)

판소리 ‘수궁가’가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이하 귀토, 6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으로 변주된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고선웅 작·연출과 한승석 작곡·음악감독 콤비작으로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가 육지에서 겪는 ‘삼재팔란’(三災八亂)에 주목한 작품이다.

산속 팔란을 피해 수궁으로 떠났다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꾀를 내 살아 돌아온 토부(兎父)에서 시작하는 ‘귀토’는 ‘수궁가’ 이후의 이야기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와 가족상봉을 했지만 독수리에게 잡힌 토부와 포수에 목숨을 잃은 토모(兎母), 그로 인해 천애고아로 혼자 남게 된 토자(兎子, 김준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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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귀토-토끼의 팔란' 공식 포스터.(사진제공=국립극장)

고난과 재앙으로 고단한 육지의 일상을 피해 평화로운 미지의 세계 수국으로 떠나지만 여전히 녹록지 않은 일들을 겪게 되는 토자와 그 토끼를 수궁으로 이끄는 자라(유태평양)의 이야기다.

‘변강쇠타령’ ‘흥보가’를 재창조한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흥보씨’에 이어 ‘수궁가’를 ‘귀토’로 변주한 고선웅 ·연출은 토끼와 자라의 이야기에서 “도망치지 말고 바람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자”는 데 방점을 찍는다. 

토끼와 거북(龜兎) 그리고 ‘살던 땅으로 돌아온다’(歸土)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 ‘귀토’의 토자는 역경을 극복하고 사유하며 성장하는 캐릭터다. 

여전히 파란 투성이인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와 대처가 변화한 토자에 대해 고선웅 ·연출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다”며 “바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갈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부는 대로 유연하게 흔들리며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전했다.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과 한승석 작곡·음악감독이 공동 작창으로 참여한 ‘귀토’는 판소리 ‘수궁가’의 원형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으로 각색된 이야기에 맞게 소리를 짜 재배치해 조화를 이룬다.

정광수제 ‘수궁가’의 탄탄한 음악적 짜임새에 진양·중모리·자진모리·엇모리·휘모리 등 다양한 장단을 이야기의 흐름에 맞게 재구성한 ‘귀토’의 소리는 국악기로 편성된 15인조 라이브 연주와 어우러지며 전통과 동시대성을 조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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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귀토-토끼의 팔란'(사진제공=국립극장)

‘귀토’는 3년 7개월 동안의 리모델링을 마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첫 시범 운영 작품이기도 하다. 김철호 극장장의 전언처럼 “한 가지 목적을 가진 극장이 아닌, 국악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순수음악 공연이 자연음향으로도 가능하고 무용, 뮤지컬 등 전자음향 필요한 공연도 소화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한” 해오름극장의 특징을 한껏 살린 무대도 볼거리다. 

1500여개의 각목을 이어 극장 전체를 언덕으로 만들고 바닥에는 8미터 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하는가 하면 리모델링으로 가능해진 승강무대도 활용한다. 이를 통한 삼재팔란의 세상, 수국 등 다채로운 시공간 표현, 한국적 미감과 추상적 표현 등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흥미롭다.

토자와 자라는 4월 ‘절창’으로 호흡을 맞춘 국립창극단원인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다시 한번 함께 한다. 원작에는 없는 토녀(兎女)는 민은경, 용왕은 윤석안, 반골기질의 병마사로 토자와 토녀의 돕는 주꾸미는 최용석 등이 연기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