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r Play 인터뷰]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이지나 연출·김성수 음악감독 “눈물나게 부러운!”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1-05-14 18:15 수정일 2021-05-16 20:48 발행일 2021-05-1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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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 김성수 음악감독(왼쪽)과 이지나 연출(사진제공=서울예술단)

“원작이 워낙 유명하고 최근에 드라마까지 했었어서 옴짝달싹을 못했어요. 원작에 충실한 진행으로 가면서 뮤지컬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고 집중했죠. 쳐낼 건 쳐내고 드라마, 만화와의 차별화할 건 하고.”

창작가무극 ‘나빌레라’(5월 14~30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의 이지나 연출은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다. HUN과 지민의 동명 웹툰을 무대에 올린 ‘나빌레라’는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한 일흔살의 덕출(최인형·조형균,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과 발레리노를 꿈꿨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그 마저도 어려워진 스물셋 채록(강상준·강인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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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 덕출 역의최인형(왼쪽)과 채록 강인수(사진제공-서울예술단)

서울예술단원인 최인형과 강상준이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덕출과 채록으로 무대에 오르며 ‘마마돈크라이’ ‘빈센트 반 고흐’ ‘검은사제들’ ‘호프’ 등의 조형균과 마이네임의 멤버 강인수가 새로 합류했다.

2019년 초연된 ‘나빌레라’는 두 번째 시즌을 맞으며 이지나 연출과 김성수 음악감독이 새로 투입돼 변화를 맞는다.

‘마마돈크라이’ ‘광화문연가’ ‘곤투모로우’ ‘지저스크라이스트수퍼스타’ 등으로 오래 호흡을 맞춘 이지나 연출과 김성수 감독은 “아예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이라며 “초연이 휴먼 드라마라면 이번 ‘나빌레라’는 쇼뮤지컬”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간 했던 그 어떤 것보다 착한 작품이에요. 인간이 자연사하는 유일한 작품이고 중간에 아무도 안죽는 작품이죠.”

이어 “연습하면서, 런(실제 공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는 연습)을 돌면서도 이지나 연출님이 계속 눈물을 흘리셨다”고 귀띔하는 김성수 감독에 이지나 연출은 “덕출 자식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말을 보탰다.

“다들 너무 착해요. 발레를 반대하는 것도 착해서고 악역도, 막장도 없어요. 덕출은 복이 많네 싶어서 눈물이 나요. 부러워서. 그러면서 제 인생이 생각나 울기도 해요. 저희 어머니도 10년째 투병 중이시고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런 기억 때문에 우는 거지 제 작품에 빠져서가 아니에요. 저는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거나 보고 싶은 걸 최선을 다해 할 뿐이죠. 그랬을 때 그걸 이해해주시는 관객들 때문에 지금까지 버텼어요”

◇선택과 집중의 기준 “뮤지컬만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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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span style="font-weight: normal;">작가무극 ‘나빌레라’ 이지나 연출(사진제공=서울예술단)
“선택과 집중의 기준은 ‘무대는 다른 장르’라는 거였어요. 집에서 편안하게 넷플릭스나 TV를 볼 수 있는데 마스크를 쓰고 큐알코드를 찍는 번거로운 과정을 감수하고 공연장에 오시는 거잖아요. 영화나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하는 음악, 노래, 춤, 무대 전환과 조명 등을 직접 보는 재미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 이지나 연출은 “무대, 넘버, 스태프 등 초연의 것을 그대로 사용해야는 상황에서 새로 합류하면서 단 하나 고집한 게 김성수 음악감독이었다. 음악적으로 전체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라며 “김성수가 진두지휘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지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곤 “신곡은 없다. 가창 곡은 좀 줄였고 연주곡이 엄청 많아졌다”고 설명한 이지나 연출에 김성수 음악감독은 “하다 보니 많아졌다”고 부연했다. 이어 “기존 곡을 저와 이지나 연출님이 같이 하는 화법들로 드라마에 맞게 재편곡했다. (초연과) 똑같은 곡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기존 연주곡 중 일부는 재해석해서 배치하고 안되는 건 제가 새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가창 넘버가 파격적으로 적어요. 그럼에도 음악 수는 늘었어요. 제가 만들어야 할 곡들이나 음악적 요소들이 많아졌죠. 기존 넘버들은 같은 곡이 맞나 싶게 변형됐어요. 음악에 주안점을 두고 드라마 흐름을 잡아가는 구성이어서 시네마틱하게, 영화적 흐름으로 갔죠. (이지나) 연출님이 연주곡을 마구 투척해주셔서 밴드마스터가 된 기분이에요.”

그리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중 ‘봄의 태동’, 니콜라스 파가니니의 ‘요정의 춤’, 세르게이 피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줄리엣’ 중 ‘기사들의 춤’, 표도르 차이콥스키 ‘오두까기 인형’ 중 ‘작은 서곡’ 등 클래식 발레곡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들을 비롯해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 ‘채록의 분노’, ‘폴스카’(Polska) 등의 연주곡과 채록의 ‘내 인생’ 등이 추가되기도 했다.

“이 작품을 하기로 하면서 제가 힘들 건 알고 있었어요. 프로덕션 특징상 효과음도 많고 텍스처 음악도 많아서 100% 라이브로는 못가요. 섞어서 가야하는데 그러려면 보다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죠. 음향팀에서 넘겨준 FX효과 리스트 중 3분의 1은 제가 만들어야하는 것들이었어요. 게다가 믹싱까지 제가 다 해야 해서 음악적인 것 보다는 절대적인 시간이 모자라는 게 가장 어려웠죠.”

힙합사운드와 비밥, 클래식 발레곡까지…김성수여서 가능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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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 김성수 음악감독(사진제공=서울예술단)

“연출님께서 새로 추가한 채록의 넘버 ‘내 인생’은 ‘시간이 없으니 김성수가 주는 대로 할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믿어주시니 제가 춤이라도 추죠.”

프롤로그에 이어 등장하는 채록의 새 넘버 ‘내 인생’에 대해 “힙합사운드 빅밴드의 비밥(1940년대 중반 미국에서 유행한 자유분방한 재즈 연주스타일)이 하이브리드돼 있다”며 “힙합과 비밥으로 이뤄진 두 번째 넘버에서 귀여운 발레 연습곡 등으로 이어지다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클래식 발레곡까지 세 번을 꺾여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그 음악을 들은 이지나 연출님이 ‘이곡에선 꿈을 펼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시작부터 압도할 수 있게 하고 싶은 걸 다 하라’고 해주셨어요. 덕출의 ‘사라진다는 것’은 코드도 바꾸고 완전 다른 노래로 매시업(서로 다른 곡을 조합해 새로운 곡을 만들어 내는 것)했어요.”

김성수 감독의 말에 이지나 연출은 “BTS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에게 ‘레미제라블’ 음악을 들이밀면서 명곡이라고 해도 공감받을 수 없다. 김성수 감독에게 힙합을 해달라고 한 이유”라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 뮤지컬은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수 감독은 이지나 연출과 끊임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음악을 완성시켜가는 과정에 대해 작품발전을 위해선 필연적인 것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곤 “결국 제가 해야하는 일이 많아지지만 더 좋아지는 아이디어, 수긍 갈 이야기들”이라고 말을 보탰다.

“텍스트에 매몰돼 있는 제작자, 연출들이 많아요. 텍스트에 집중하는 프로덕션을 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 이지나 연출님은 정반대에 서 계세요. (이지나) 연출님이랑 했던 ‘지구를 지켜라’는 연극인데도 곡이 23곡이었어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도 그랬고 장르가 통합돼 유니크해지는 느낌이죠.”

김성수 감독의 말에 이지나 연출은 “제가 선택한 뮤지컬이 TV나 영화, 드라마를 못해서 하는 초라한 장르, 마이너리그가 되는 게 싫다”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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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 덕출 역의 조형균(왼쪽)과 채록 강상준(사진제공=서울예술단)

“드라마의 채록이었던 송강도 편집 없이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채록 역의) 강인수 만큼 춤을 출 수는 없어요. 우리 조형균·최인형이니까 하는, 누가 와도 못하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이는 마흔도 안된 배우 조형균을 70세의 덕출 역으로 캐스팅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지나 연출은 “춤에 대한 기대”라며 “일생의 꿈인데 아무리 할아버지지만 마지막 발레장면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지면 자칫 민폐 캐릭터로 오해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덕출은 발레를 일생의 꿈으로 마음에 품어온 할아버지잖아요. 어떻게 보면 주변 사람들을 되게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죠. 그런데 춤까지 못춰서 ‘저 할아버지 때문에 여럿이 고생하네’라고 느껴지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의 춤이 끝에는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세상을 바꾸는 춤을 추지는 못할 거예요. 하지만 그 수준이 모든 사람들이 치매 걸린 할아버지에게 발레를 가르쳐 저 정도까지 성취했구나 싶은, 박수쳐줄 정도의 여정은 보여야 했죠.”

덕출의 자아, 채록의 생게수단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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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 김성수 음악감독(왼쪽)과 이지나 연출(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일단 안무는 발레에서 벗어났어요. 발레를 기본을 두지만, 그것에만 국한되지 않는 몸 쓰기로 표현했어요. ‘서편제’랑 비슷해요. 판소리하는 사람의 이야기지 판소리로 뮤지컬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나빌레라’는 발레작품이 아니라 발레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니 그 문법에 맞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나빌레라’는 발레에 국한되지 않은 여러 댄스 장르를 아울러 “발레처럼 보이지만 발레 선이나 포즈를 이용한 뮤지컬 안무”로 표현된다.

“덕출이 하고자하는 발레는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인 것 같아요. 덕출은 마지막까지 발레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갔어요. 덕출은 자아가 강한 사람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보통 자식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곤 하지만 덕출은 마지막까지 자기주도적인 캐릭터죠.”

이렇게 전한 이지나 연출은 “가만히 보면 굉장히 이기적인 할아버지”라며 “애티튜드가 자분자분한 양반이라 그렇지 채록이, 가족 등 모두에게 자기주도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덕출의 자기 확인을 도와준다”고 부연했다.

“자기주도적이고 독립적인 모양새는 자칫 민폐로 느껴질 수도 있는 덕출이 주인공으로서 자리매김하는 이유기도 해요. 재산에 대해서도 그래요. 자신의 차는 손녀에게 주고 거기서 좀 확대해 채록에게는 유학자금을 주죠.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요즘 ‘나만 좋으면 된다’는 얘기를 하는 이유기도 해요. 나만 좋으면, 제 길을 열심히 가면 민폐는 안끼쳐요. 남을 배려하거나 내 식구들, 동료들을 생각하니까 문제들이 생겨나죠.”

이어 이지나 연출은 “발레가 덕출에겐 나를 확인하는 수단이자 내가 남한테 민폐덩어리가 되지 않으면서 죽을 때까지 원하는 게 있음을, 인간의 니즈가 추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면 채록에게는 생계수단”이라고 표현했다.

“채록에겐 남은 게 그것 밖에 없어요. 채록이 말해요 ‘나 발레 하나, 그거 하나 좀 잘해요’라고. 채록이는 지금의 젊은이, 그 중 가난한 부모에 아무 것도 지원받지 못하는데 요만큼의 재능이 있는 발레마저도 돈 때문에 제대로 못하는 지금 20대의 상징이죠. 그런 젊은이들에게 사회가 뭘 해줘야할까 고민했어요. 결국 우리 덕출이는 자신의 말년을 함께 해준 채록이를 유학보내줌으로서 실질적인 도움을 줘요. 그 실질적인 도움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인생 설교는 그만하고 ‘지갑을 열어라’예요. 굳이 돈만이 아니에요. 더 좋은 교육, 기회 제공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 해법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