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코멘트] 잔잔한 일상의 로맨스, 극적 반전…송용진·장지후·정원조가 연극 ‘안녕 여름’을 선택한 이유!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1-05-12 18:51 수정일 2021-05-12 18:56 발행일 2021-05-12 99면
인쇄아이콘
연극_안녕, 여름_공연사진_제공 알앤디웍스 (3)
연극 ‘안녕, 여름’ 태민 역의 정원조(사진제공=알앤디웍스)

“생각해보니 첫 로맨스 작품이에요. 학생 때는 사랑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도 많이 했었는데…로맨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안녕, 여름’은 잔잔한 일상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극적 반전이 있어서 더 재밌게 하고 있죠.”

연극 ‘안녕, 여름’(6월 20일까지 유니플렉스 2관)에서 유명 사진작가 태민으로 분하고 있는 정원조 뿐 아니다. 정원조가 말한 “잔잔한 일상의 로맨스, 극적 반전”은 초연에 이어 태민으로 다시 돌아온 송용진에게 “이 작품을 또 다시 하게 된 이유”이고 장지후에게도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게 된 이유”다.

연극 ‘안녕, 여름’은 드라마 ‘워터보이즈’, 연극 ‘뷰티풀 선데이’ 등의 유명 극작가 나카타니 마유미의 ‘이번엔 애처가’(今度は愛妻家)를 원작으로 한다. 유명 사진작가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1년 전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돼 반(半)백수로 지내고 있는 남편 태민(송용진·장지후·정원조,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과 그런 태민 걱정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아내 여름(박혜나·이예은)의 이야기다.

연극_안녕, 여름_공연사진_제공 알앤디웍스 (1)
연극 ‘안녕, 여름’ 태민 역의 송용진(사진제공=알앤디웍스)

결혼 6년차를 맞은 태민·여름 부부를 중심으로 태민을 비롯한 인물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자칭 ‘늙은 게이’ 조지(조남희·남명렬), 착한 심성으로 모두를 이해하고 보듬는 태민의 조수 동욱(박준휘·반정모·조훈), 그의 연인인 배우지망생 란(박가은·이지수)이 엮어가는 소소한 일상이 극적 반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2002년 연극으로 초연됐고 희곡집·소설·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출판물로 출간됐으며 2009년에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연출로 영화화돼 사랑받았다. 한국 프로덕션의 연극은 2016년 초연된 후 5년 만에 돌아왔다.

오루피나 연출의 설명처럼 “결핍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결혼, 인간관계, 일로 연결된, 결핍을 가진 사람들을 ‘조지’라는 역할로 묶는 작품이다.” 이에 원작에서 다소 평면적이던 조지 캐릭터는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결핍을 가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이는 입체적 캐릭터로 변주됐다.

안녕여름
연극 ‘안녕, 여름’ 태민 역의 장지후(사진제공=알앤디웍스)

독특하거나 자극적이거나 기괴한 캐릭터와 비극적이고 범상치 않은 이야기들이 주류를 형성한 한국 공연계에서 ‘안녕, 여름’의 평범함 혹은 잔잔함은 오히려 ‘신선함’을 선사한다.

뮤지컬 ‘마마돈크라이’ 중 영생을 꿈꾸는 사회성 제로의 프로페서 브이, ‘검은사제들’의 구마사제 최부제, ‘헤드윅’의 ‘앵그리 인치’를 남겨둔 록밴드 보컬, ‘록키호러쇼’의 프랑큰 퍼터 박사,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동성에게 우정과 사랑을 느끼는 복역수 등 예사롭지 않은 역할들을 주로 했던 송용진에게도 ‘안녕, 여름’은 그래서 “꼭 다시 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송용진은 “초연에 비해 더 깊고 부드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딱히 달달한 장면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랑하는 상대가 있고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즐겁게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달의 폭력으로 태어나 저주와도 같은 영생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마마돈크라이’의 드라큘라 백작, ‘환상동화’의 전쟁광대, 시인 이상의 창작 고통을 무대로 옮긴 ‘스모크’의 초,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적으로 변주한 ‘렌트’의 로저 등으로 극적이고 격렬한 연기를 주로 했던 장지후에게도 ‘안녕, 여름’의 “평범하고 잔잔한 일상의 로맨스”는 출연 이유가 됐다.

“일상을 연기하는 일, 이걸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더 작은 단위의 연기? 자연스러운 연기? 여전히 이 부분에서는 고민이 많지만 큰 사건이나 도드라지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하는 연기랑은 다른 것은 분명하죠. 태민이는 무대 위에서 그저 기지개를 켜고 신문을 보고 여느 부부처럼 구시렁거리거든요. ‘차 좀 따라줘’ ‘밥은?’ ‘벌써 12시 반이야’ 등 대수롭지 않은 말들을 무대 위에서 내뱉는 경험은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어 장지후는 “물론 아직 더 찾아가야 하고 어쩌면 평생 걸려서 배워야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게 이 일이 주는 매력”이라며 “좋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아주 행복하게 공연하고 있다”고 말을 보탰다.

“늘 진짜 살아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연기할 그날이 올 때까지 노력해야죠. 로맨스는…그건 여전히 좀 부끄럽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