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전소정 변리사 "RCEP 믿고 방심은 금물…과도기 동안 상표권 보호해야"

노연경 기자
입력일 2021-01-25 07:00 수정일 2021-06-10 16:59 발행일 2021-01-2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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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소정 변리사가 말하는 '동남아 지재권 사수' 전략
전소정 변리사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파트너 변리사가 8일 강남구 역삼동 지심특허법률사무소에서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철준 PD)

“예전보다 진출 환경이 훨씬 더 좋아진 건 맞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과도기 기간 동안 상표브로커로 인한 피해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파트너 변리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 소식에 동남아시아 진출을 고려하는 기업들에게 이 같이 조언했다.

RCEP은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뉴질랜드 등 15개국이 협정을 타결했다. 특히 RCEP 제11장 지식재산권 협정문은 상표브로커의 악의적인 출원을 거절하거나, 등록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표브로커는 타인의 상표를 재산적 가치로 활용하기 위해 상표 출원을 무단 선점하는 이들을 말한다. ‘제2의 중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남아에서도 상표브로커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상표권 보호 조항이 포함된 RCEP 타결이 국내 기업들에게 희소식인 이유다.

전소정 변리사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파트너 변리사가 8일 강남구 역삼동 지심특허법률사무소에서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이철준 PD)
전소정 변리사는 “동남아 국가 중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지식재산권 보호 제도가 부족한 나라들이 많은데, RCEP 체결로 기업들이 해당 국가에 상표권 보호를 요구를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생긴 것”이라며 국내 기업의 동남아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말했다.

다만 RCEP 체결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각국에서 RCEP 조약을 바탕으로 국내법을 재정비하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 변리사는 이 ‘과도기 기간’ 동안 상표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면 중국 진출 당시 그랬던 것처럼 많은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빙수 브랜드 설빙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큰 인기를 끌자 중국 진출을 추진했지만, 중국에서 설빙과 유사한 상표를 등록하고 비슷한 메뉴를 파는 곳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진출에 난항을 겪었다. 이와 관련한 소송은 최근에야 중국 상표평심위원회가 유사 상표에 대한 무효 심판을 내리면서 마무리됐다.

전 변리사는 동남아 진출 때 이와 같은 전례를 겪지 않으려면, 기업들이 RCEP으로 체결된 조약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시사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과도기 기간에도 체결에 따른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업들은 보통 상표권 분쟁을 할 때 국내 대리인과 해당 국가의 현지 대리인, 이렇게 2명의 대리인을 끼고 일을 한다”며 “실무적인 일을 하다 보면 새로운 조약이 만들어졌어도 현지 대리인이 이를 반영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알아서 챙겨줄 것이라 기대하면 안되고, RCEP 조약을 반드시 반영해달라고 국내 대리인이 강력히 요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현지 판례도 국내 대리인이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실제로 전 변리사 역시 한국 기업이 아닌 중국 기업에게 적용된 중국 내 판례를 찾아 서울우유의 상표권 분쟁을 승소로 이끈 경험이 있다.

전소정 변리사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파트너 변리사가 8일 강남구 역삼동 지심특허법률사무소에서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철준 PD)

전 변리사는 “중국 상표법에 ‘기타 부정당한 수단으로 등록된 상표는 사용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는데, 중국 최고인민법원이 자국 상표브로커가 국내(중국) 브랜드 상표권을 빼앗은 것을 이를 근거로 무효화시킨 판례가 있었다”며 “이 판례를 해외(한국) 브랜드에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승소로 이어졌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화장품부터 의류, 요식업까지 동남아 시장에서의 K브랜드 인기는 이미 높은 편이라 국내 기업의 진출 전망은 좋은 편”이라며 “상표브로커나 모조품 때문에 진출해도 실익이 없을 것이라 여기던 기업들도 RCEP 조약 체결을 기점으로 동남아 시장으로의 진출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정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중국 내 법이 개정되기 전에 K브랜드의 상표 소송사건이 수 백건이 넘는 승소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의 든든한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란 말이다.

전 변리사는 “실제로 한국과 중국 특허 당국 최고위급 책임자들이 실무회담을 할 때 (특허청이) 한국의 어떤 브랜드가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며 “특허청이 이러한 실무회담을 통해 동남아 국가들과 교류를 이어나가며 RCEP 규정이 잘 반영되는지 모니터링을 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력으로 상표권 분쟁을 이어나갈 수 없는 기업들에게 정부의 지원사업 또한 큰 역할을 한다. 영세한 기업들은 비용이나 시간 문제 때문에 선점 당한 자신의 브랜드를 포기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출원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애써 쌓아온 브랜드 신용을 다시 쌓아야 하기 때문에 손해가 크다.

이 경우 전 변리사는 여러 중소기업이 함께 힘을 합칠 것을 권한다. 그는 “중국에서 한국 구체관절인형이 인기를 끌면서 모조품 판매가 성행했는데, 20개 정도의 업체들이 공동으로 대응해 승소한 사례가 있다”며 “심사관 입장에서도 동종업계의 여러 기업들이 피해를 봤다는 사실은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소송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대응책은 출원을 빨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 상표권을 출원할 때 해외시장 진출을 조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가능한 빨리 출원을 하라고 권고했다. 동시에 출원을 하지 못했더라도 6개월 이내에는 반드시 출원을 마쳐야 한다.

그는 “해외 출원은 여러 절차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파리조약에 의한 특허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이 우선권 이익을 볼 수 있는 기간이 6개월이다”며 “6개월 안에만 진출 국가에 상표권을 출원하면 국내 출원일과 동일한 일로부터 상표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이미 상표권을 선점당했다고 하더라도, RCEP 체결 등 상표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분위기가 마련됐으니 법적인 대응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글=노연경 기자 dusrud1199@viva100.com

사진=이철준 기자 bestnews2018@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