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通] 존중받아 마땅한!

새문안通
입력일 2021-01-12 14:25 수정일 2021-01-12 15:57 발행일 2021-01-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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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는 짜증나.” “저건 배우‘빨’이지.” “저 배우의 인기는 얼굴값이지.”

“어때요?”라고 묻는 동시에 자신의 감상평을 정답처럼 쏟아내는 이들이 있다. 질문인지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건지, 단언으로 자신의 의견이 옳다 강요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행동에 누군가는 맞장구를 치고 또 누군가는 그저 입을 다물어 버린다. 또 어떤 이는 적극적으로 다른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다.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에서의 ‘단언’은 어쩌면 오만이다. 누군가가 느끼는 감정이나 감상에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감상법이나 관전포인트, 공감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극과 극의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배우든, 콘텐츠든, 신파든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뉘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던가. 그래서 어떤 선택이든 각자의 몫이고 권리다. 물론 이 역시 상대가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할 때까지 우겨대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각자의 취향이나 선택은 그대로 존중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면이 강한 ‘신앙’은 이상하게도 그 ‘선택’이 온전히 저마다의 몫이 되지 못하곤 한다. 코로나19 확산세를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상향에도 몇백명의 신도들이 모여 대면예배를 강행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백신을 맞으면 노예가 된다”는 대표도 있다. 6번이나 고발당하고도 또 다시 대면예배를 강행하며 “종교의 자유”를 외치는가 하면 수백명의 확진자를 내고도 검사를 받지 않기 위해 숨어버리는 신도들이 속출하기도 한다.

취향의 문제는 감정싸움이나 인간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뿐이다. 하지만 지금, 엄중한 코로나시국에 ‘신앙’의 문제는 각 구성원, 더 나아가 국가의 안전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정답이 없는 저마다의 취향이 아닌 사회 ‘안전’이 존중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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