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나토(NATO)’…행동하는 원칙주의자 김용환 한국FPSB 회장

이은혜 기자
입력일 2020-12-21 07:00 수정일 2021-05-12 20:20 발행일 2020-12-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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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김용환 한국FPSB회장
‘나토(NATO), Not action talk only’의 줄임말로,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삶을 지양하려는 김용환 한국FPSB 회장의 좌우명이다. 김 회장은 금융업계에만 40년 몸담은 ‘엘리트’이자 ‘법과 원칙’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원칙주의자다. 걷는 곳마다 변화의 바람이 불었던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 엄격하게 자란 원칙주의자 ‘엘리트 경제 관료’
김용환회장(한국FPSB)

김용환 회장은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대천중학교를 졸업한 뒤 큰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교육자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엄격하게 컸고, 그 때부터 ‘법과 원칙’은 김 회장 삶의 이정표가 됐다. 그러나 김 회장이 처음부터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김 회장은 “대학교에선 법을 전공해 가난한 사람과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고 싶었다”며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34개월의 군 생활은 김 회장의 인내와 끈기를 길러주는 시간이 됐다. 김 회장은 “신병 시절 받은 훈련이나 완전무장하고 2박3일을 걷는 훈련 등 군대라는 엄격한 곳에서 최악의 순간을 겪다 보니 인내와 끈기, 배운 점이 많았다”며 “향후 진로를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당시 맺었던 인연들과 아직도 연락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제대 후 김 회장은 출발부터 엘리트였다.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다음 해 재무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89~1991년 ‘남부의 하버드’로 불리는 미국 테네시주 사립종합대 ‘밴더빌트대학교(Vanderbilt University)’에서 경제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95~1998년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에서 파견근무를 했다.

◇ ‘엘리트 관료’가 일궈낸 굵직한 변화

김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재정경제부 복지생활과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연금제도와 사회보장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김 회장은 재정경제부가 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무 역할을 해내며 그가 일궈낸 무수한 변화의 첫 단추를 끼웠다.

김 회장은 2002년부터 금융위원회의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에서 금융증권과장을 지냈고, 2005년 12월부터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정책2국의 국장을 맡았다. 금융증권과장으로 근무할 땐 현대투신증권과 현대투신운용이 미국계 금융그룹인 푸르덴셜에 매각되는데 힘을 실었고, 감독정책2국장 시절에는 생명보험사들을 증시에 상장시켰다.

2007년 3월부터는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내며 회계제도를 개혁해 중소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했다. 2008년 3월부터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을, 2008년 12월부터는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지냈다.

그는 2011년 2월부터 한국수출입은행장을 지내며 수출입은행이 해외 지분에 투자할 수 있도록 37년 만에 법을 개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 회장은 “은행이 주도해서 해외 지분투자를 하면 다른 은행과 기업들의 해외 지분 투자가 늘겠다는 생각에 어려운 과정을 거쳐 개정했다”고 말했다.

NH농협금융지주 회장직에 있던 2015년에는 농협금융이 조선·해운 업황 악화로 막대한 부실에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김 회장은 관리시스템에 손을 대 부실채권 1조6000억원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빅배스(BigBath)’를 단행했다. 김 회장은 “빅배스는 농협금융지주가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를 철저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 새 둥지 한국FPSB, 주식 열풍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

김 회장이 한국FPSB에 들어간 계기는 주변인의 추천이다. 김 회장은 “한국FPSB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잘은 몰랐다”며 “FPSB에 들어온 이후 기관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고 조직에 구태의연한 부분이 많다고 느껴 딜로이트로부터 조직 진단을 받고 인사를 단행해 규정, 이사회 등 많은 부분을 뜯어고쳤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한국FPSB가 잘 알려지지 않은 점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쳤다. 올해처럼 주식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은 만큼 재무설계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 실제로 올해 10월 한국FPSB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CFP와 AFPK이 상담과 맞춤형 제안서를 받은 129명의 금융소비자 중 92.1%가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와 국내재무설계사(AFPK)의 상담 능력과 태도에 만족하고, 제무설계 제안서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최근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에서 고위험 상품을 팔다가 큰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금융기관만이 금융상품을 팔았기 때문”이라며 “한국FPSB에서 육성하는 CFP와 AFPK 자격증은 70점이 최소 점수이고 사후관리를 철저하게 이어오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재무 상담 및 설계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정부의 내년 초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금융상품 판매자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짐에 따라 CFP와 AFPK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들이 제도권 안으로 본격 들어와 육성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책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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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본인이 걸어온 길과 그 안에서 이뤄온 굵직한 변화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금융업 40년 종사의 경험을 담은 책을 펴내 후배들에게 교훈을 주고 싶다고 했다.

김 회장은 “그간 굵직한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매번 무수한 공청회를 열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며 1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됐고, 아주 힘들었다”며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일 하는 것이 즐겁고, 젊어짐을 느낀다”며 본인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취미 생활을 묻자, 과거 맺었던 인연들과 공익적인 사업 구상을 떠올리기도 한다고 답했다.

김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생활 환경으로 변화되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요양병원이라던가 파이낸싱 해외 사업들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며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공유경제와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곤 한다”고 말했다. 향후 한국FPSB와 이후 그가 있을 곳에서 이뤄낼 변화들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이은혜 기자 chesed7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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