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더컬처] ‘작은 우주’ 피아노 연주자 김선욱, ‘큰 우주’ 지휘로 총천연색 음악을 꿈꾸다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9-11 18:45 수정일 2020-09-12 16:33 발행일 2020-09-11 99면
인쇄아이콘
김선욱
피아니스트 김선욱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분명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을 해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쁘게 살아왔던 우리들이 한 템포 쉬면서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든 면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해보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애초 3월 리사이틀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9월로 미뤄졌다. 그 9월 공연을 위해 베를린에서 입국해 자가격리 중 코로나19 재확산되면서 다시금 공연은 12월로 연기됐다.

“연주가 없어진 이 순간에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스스로 익숙하지 않고 경험해보지 못한 레퍼토리를 연습할 수 있었죠. 또 평소에 자주 하지 않던 요리도 많이 늘었고 잦은 이동과 비행으로 지친 건강도 더 신경 쓸 수 있었어요.”

베를린을 기반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코로나19로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시기에 좌절 보다는 스스로를 보듬고 단단히 하며 살아오던 시대와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더불어 “공연 관계자들, 연주회에 오시는 관객분들 그리고 연주자들에게 모두 아쉬운 상황이지만 언젠가 모두 다 웃을 날이 있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하면서 또 다른 행보를 준비했다.

“9월에 2개의 음반이 발매됩니다. 그 중 하나는 작년 9월 서울에서 공연실황을 녹음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정명훈/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과 피아노 소품집(Op. 118)이 담긴 음반이고 다른 하나는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비올리스트인 아미하이 그로스(Amihai Grosz)와 녹음한 앨범입니다.”

그 중 정명훈&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연주에 대해 “눈부신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음반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최선을 다한, 후회 없는 음반”이라고 소개했다.
KimSunWook004
<span style="font-weight: normal;">피아니스트 김선욱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작은 우주’ 피아노, ‘큰 우주’ 지휘

“피아노가 ‘작은 우주’라면 오케스트라는 그야말로 ‘큰 우주’입니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다른 악기보다 음역대가 크고 화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분석하는 데 이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피아노를 잘 연주한다고 해서 지휘를 잘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피아노는 혼자 연습하고 연주하지만 오케스트라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휘자는 혼자서 아무 음도 낼 수 없거든요.”

9월 앨범 발매에 이어 12월 14일에는 “어려서 꿈꾸던” 지휘자로 데뷔한다. 2014/2015 상주 연주자로 몸 담았던 본머스 심포니에서 지휘를 하기도 했던 그의 본격적인 지휘자 활동 선언인 셈이다.

“30대 초반을 넘기면서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전하고 싶어졌어요. 2014/2015 시즌 상주연자주였던 본머스 심포니에서는 지휘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시 상임지휘자였던 킬릴 카라비츠가 이벤트로 앵콜곡 지휘를 저에게 제안해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파드되를 지휘죠. (피아니스트로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연주 후여서 에너지는 바닥난 상태였고 리허설이 굉장히 짧았는데도 (지휘하고 나서) 그저 너무 행복했어요.”

그렇게 그는 올해 4월 유럽에서의 지휘자 데뷔 무대를 계획했지만 이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1/2022 시즌으로 미뤄졌다. 이에 ‘작은 우주’ 피아노를 연주하던 김선욱은 올해 12월 한국에서 ‘큰 우주’ 지휘를 정식으로 시작한다.

“지휘자로 무대에 오르는 첫 발걸음이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제 피아노 연주를 좋아해 주셨던 분들 앞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한편으로 든든하고 행복해요. 지휘자로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완전히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 될 거예요. 지휘라는 세계를 절대 쉽게 생각하지 않아요. 진심을 다해 연주한다면 관객들도 그 진심을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넓은 음악을 하고 싶은 한 음악가의 길에 동참해주시면 힘이 될 것 같아요.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지휘자 데뷔 파트너, KBS교향악단 그리고 베토벤과 브람스
KimSunWook005
피아니스트 김선욱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두분은 제가 어릴 때 꿈이 지휘자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계셨어요. 정명훈 선생님께 말러 교향곡 2번 스코어(악보)를 들고 찾아가 사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때 선생님께서는 ‘네가 이 곡을 언젠가 지휘할 날을 기대한다’고 써주신 기억이 나요.”

그는 정명훈과 김대진 지휘자에게 추천서를 받아 2013년 영국 왕립 음악원 석사과정에 돌입해 피아노와 지휘를 동시에 공부했다.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와 지휘 공부 병행에 대해 그는 “정말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의 전언처럼 “음악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전혀 다른 프로세스를 요구하기 때문”이며 “음악이라는 근본은 같아도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음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KimSunWook007
피아니스트 김선욱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돌이켜 보면 런던에서의 3년은 정말 힘든 시간이기도 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이 있었어요. 피아노 연습은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밖에 할 수 없었죠. 많은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를 익혀야 하는데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연주도 꾸준히 연습하려니 과부하가 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이어 김선욱은 “졸업 후에 가장 기뻤던 것이 피아노 연습을 아무 때나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그 뒤로는 지휘랑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 피아노에 매진했다”고 덧붙였다.

12월 지휘자로서 첫 발을 딛는 그의 파트너는 KBS교향악단과 베토벤 그리고 브람스다. 그는 이 무대에서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리고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과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은 지휘과 학생시절부터 자주 연습하고 배운 곡이에요. 제가 사랑하는 레퍼토리이기도 하죠. 다양한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교감하며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관현악의 묘미이기에 어떤 사운드가 만들어질지 기대가 큽니다.”

이어 “고전음악의 협주곡들은 큰 편성의 실내악이라고 생각한다. 베토벤의 ‘협주곡 2번’을 프로그램에 넣은 이유도 단원들과 재미있게 실내악을 연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제가 지휘자로서 더 경험이 많이 쌓인다면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 무궁무진해요. 피아노로 할 수 없는 곡들을 오케스트라는 할 수 있으니까요. 오케스트라여야만 가능한 총천연색의 음악들이 너무나도 많거든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의 듀오 리사이틀 그리고 피아노 독주회
KimSunWook002
피아니스트 김선욱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많은 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저도 정경화 선생님의 오랜 팬입니다. 선생님이 녹음하신 수많은 음반들을 들으며 자랐고 공연을 보며 꿈을 키웠죠. 이번에도 서울에서 지내면서 선생님과 리허설을 자주 진행했는데 음악적인 디테일과 선생님이 음악으로 그리시는 큰 그림에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12월 8일 김선욱은 피아니스트로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3번’ 전곡을 연주한다. 정경화의 “오랜 팬”이라고 밝힌 김선욱은 “평소에도 가끔 전화통화를 하며 연주자로서의 고민이나 고충에 따뜻하게 조언해주시고 응원해주신다”며 “모든 순간순간 정말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전했다.

KimSunWook006
피아니스트 김선욱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3월에서 9월로, 다시 12월로 미뤄진 ‘김선욱의 피아노 리사이틀’에서는 베토벤의 ‘안단테 파보리’와 ‘피아노 소나타 30, 31, 32, 32번’을 연주한다. 

“베토벤의 ‘안단테 파보리’는 친근하며 포근하고 따뜻한 곡입니다. 그리고 70분간 쉬지 않고 30, 31, 32번 소나타를 연주할 계획입니다. 이 세 곡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돼 있거든요. 기도하듯 관조하는 30번, 고해성사와도 같은 31번 그리고 자신의 모든 예술혼을 산화하는 32번은 그 자체로 이야기죠.”

그리곤 “소나타 30번의 마지막 음인 G샵이 31번 A플랫(G샵과 A플랫은 같은 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장대하게 마무리된다”며 “그 뒤로 불안한 감7화음의 시작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32번이 시작한다”고 부연했다. 

“초조하며 불안정한 1악장이 끝나고 변주곡 형식으로 된 2악장은 마치 생의 마지막 순간인 듯 처연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를 줘요.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조금이라도 힘과 위로를 드릴 수 있다면 연주자로서 매우 행복할 것 같아요.”

김선욱은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의 음악을 깊게 조명하고 청중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매우 기쁘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며 피아니스트로서, 지휘자로서 대면하는 베토벤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베토벤에 있어서만큼은 피아노를 칠 때에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처럼, 교향곡을 지휘할 때는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접근해요. 베토벤 특유의 음악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거든요.”

◇베를린 필하모닉 데뷔 무대 그리고 “매년 1%씩 발전하는 예술가”를 꿈꾸며

KimSunWook003
피아니스트 김선욱 ⓒMarco Borggreve(사진제공=빈체로)
“20대에 제가 베토벤의 곡을 많이 연주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베토벤 외에 다른 작곡가에도 애정과 열정이 많습니다. 연주자가 되기 위해 준비한 과정을 1막, 연주자가 되어 베토벤을 자주 쳤던 시기가 2막이라고 한다면 저는 이제 3막에 진입하고 있죠. 3막에서는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이후 행보의 각오를 밝힌 김선욱은 2021년 상반기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시작으로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LA 필하모닉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데뷔 무대를 연달아 갖는다.

“뛰어난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기뻐요. 제가 20대 초반이었다면 너무 들떠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도 같아요. 물론 전 여전히 젊고 더욱 더 발전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축적되면서 어느 무대에서나 연주를 즐기게 됐죠.”

다양한 오케스트라와의 데뷔 무대 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리사이틀, 듀오 무대에서 “즐길 것”이라고 각오를 밝힌 김선욱은 베를린 필하모닉 데뷔 무대에서 앨런 길버트의 지휘 하에 한국작곡가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해 의미를 더한다.

“진은숙 선생님의 피아노 작품들을 연주하는 것은 저에게 굉장한 즐거움입니다. 진 선생님의 피아노 연습곡은 굉장히 혁신적거든요.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할) 피아노 협주곡은 진 선생님의 혼신과 열정이 담긴 작품이죠. 항상 새롭게 해석하고 싶어요.”

이어 “후대에 많은 연주자들이 이 작품을 연주하길 바란다”며 “런던에 살고 있는 신동훈 작곡가도 굉장히 좋아한다. 앞으로 진은숙, 신동훈 작곡가들의 작품을 자주 연주할 계획”을 밝힌 김선욱은 아주 오랜 꿈을 털어놓기도 했다.

“매년 1%씩 발전하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어요. 매 연주에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제가 가고 싶은 길을 올바르게 걸으며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