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사용후핵연료 계획, 산 넘어 산… 안전성·주민동의 등 난제 산적

양세훈 기자
입력일 2020-08-18 07:10 수정일 2020-08-18 07:10 발행일 2020-08-1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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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처분장 부지선정과 건설은 난제 중의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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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월성원전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추가 건설과 관련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로 착공 길이 열렸지만, 앞으로도 ‘산 넘어 산’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른 원전도 줄줄이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이 포화한 상황이어서 추가 건립을 위한 공론화 논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에 따르면 포화 시점이 도래하는 원전은 △한빛원전 2029년 △한울원전 2030년 △고리원전 2031년으로, 각각 영광, 울진, 기장 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벌써 지역 탈핵시민단체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갈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근본적으로 24개 국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보관하는 최종 처분장 건설 부지 선정 등의 관련 논의는 사회적 혼란까지 야기할 수 있는 사항이다. 최종 처분장 부지 선정부터 안전성까지 국민적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정부의 부단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전문가 그룹 논의에서 언급된 최종처분장 건설의 주요 쟁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500미터 심층처분시설
지하 500m 심층 처분(자료=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
◇ 심층처분 기술 과학적 입증 vs 현 기술로 입증할 수 없어

핵연료는 우라늄을 정련, 변환, 농축, 과정을 거쳐 핵연료로 만들어 원자로에서 사용하는 ‘선행핵연료주기’와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의 열과 방사능을 감소시켜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후행핵연료주기’로 나뉜다.

방사능 농도가 높은 고준위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처분하기 위해서는 부식과 압력에 장기간 견딜 수 있는 처분용구에 넣고 지하 500~1000m 깊이의 안정된 지질층에 처분해야 한다. 이와 관련, ‘심층처분방식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가능하다는 의견과 불가능하다는 견해차를 보인다.

가능하다는 의견은 우리나라가 1990년대부터 영구처분 연구를 시작해 2007년부터 지하연구시설(KURT)를 통해 심층처분시스템 개념 설계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토와 조언을 받아 안전성 입증 보고서를 발간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의 결과를 보면 지진과 같은 여러 복합 시나리오를 고려한 총 위험도 기준이나 최대 연간선량 기준을 추정했을 때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규정하는 기준을 여유 있게 만족하고 있음을 근거로 들었다.

또 부지선정 작업 1단계에서는 주로 기존 문헌을 사용해 현재 확인된 단층을 위주로 후보 지역에서 배제하고, 2단계에서 실제 부지 조사를 통한 활성단층 등을 상세 조사할 수 있는 만큼, 전국 활성단층조사 완료와 관계없이 부지 선정 착수는 가능하다는 점이다.

반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의견은 심층 지하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심층 처분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엄밀한 지질 조사를 통해 부지 적합성을 평가한다고 하는데, 아직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활성단층지도(2036년 완료 예정)가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엄밀한 지질 조사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심층처분기술의 안전성 입증’에 대한 의견은 더욱 팽팽하다. 안전성 입증 의견은 공학적 방벽인 구리 캐니스터와 벤토나이트가 방사성 폐기물을 막을 수 있는 기간이 1000년 정도라는 것. 그 이상의 기간은 천연암반이 방폐물 유출을 막아야 하는데 이러한 조건이 되는 공간 및 부지가 존재한다면 기술적으로 10만년 이상 처분 가능하다는 게 과학적으로 검증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심층처분방식은 기술적으로 이미 완성된 기술로서, 핀란드 등 해외에서는 인허가를 받아 시도되고 있다는 것도 주장의 힘을 싣는 요인이다.

반대로, 구리 캐니스터 및 콘크리트 구조물은 부식 가능성이 있으며, 암염 단상이 사용후핵연료의 열에 의해 녹을 가능성, 또한 심층에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 등으로 안정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20만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더라도 20만년 동안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이들은 지반이 1년에 1mm 움직일 경우 10만년이면 100m 이상 움직인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또한 심층처분방식이 관념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심층처분을 실제 적용하고 완공해 운영 중인 나라는 현재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만 이미 인허가를 받아 건설 중이거나 안전성 심사를 거의 완료했지만, 확실히 검증되지는 않았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중간 저장을 우선 추진하고 수백 년 이후에 기술이 고도화됐을 때 영구 처분을 고려하는 방식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한 현재 기술로 심층처분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부지 선정이 가능할지가 의문인 만큼, 수백 년 장기저장 후 영구 처분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방폐장
현재 우리나라는 방사선량이 낮은 중저준위방폐장을 경주에서 운용 중이다. 경주 방폐장 입구 모습.(사진제공=한국원자력환경공단)
◇ 부지 선정, 주민 동의 우선 vs 과학·기술적 평가 결과 우선

가장 큰 난항이 예상되는 ‘부지선정 시 우선 고려 상항’에 대한 의견은 주민 동의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측과 일정 수준 이상의 주민동의가 있는 경우 과학·기술적 평가 결과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주민 동의가 우선이라는 쪽은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장의 경우에도 주민 반대로 부지 선정에 10여 차례 실패한 바 있기 때문에 고준위 방폐물은 300년, 1만년 이상 관리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주민 동의 없이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회적 혼란이 야기 될 수 있기 때문에 고준위 방폐물이 지역에 반입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전반적인 동의가 있어야 하기에 최대한 다수의 합의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후손을 위해서는 주민 동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최적 지역이 결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민 찬성률이 높은 지역을 선정하는 방식은 현세대의 찬성률 1~2%포인트 차이로 결정될 수 있으므로 장기적인 안전 관리가 필요한 사용후핵연료 특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현세대, 현재 거주하는 주민들의 의견보다 장기적으로 적합한 부지인지 여부가 더 중요해서 가중치를 더 두자는 취지다.

한편 사용후핵연료의 중장기 관리 방안 마련을 위한 시민 의견수렴 절차가 이달 초에 종료됐다. 앞으로 관련 법률정비 및 법제화 추진 방향에 대한 전문가 의견 수렴을 10월까지 진행한다. 사용후핵연료 용어 정리, 저장 시설의 법적 성격 및 관리 주체, 정책 결정 체계, 부지 선정 절차, 유치지역 지원 원칙 등이 논의된다. 또 일반국민 설문조사와 2차 공개 TV 토론회도 개최에 이어 의견수렴 분석과 정리 과정을 거쳐 재검토위는 연말까지 정부에 정책권고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내년 중 제2차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양세훈 기자 twonews@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