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클릭 시사] 에포케(epoche)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0-07-23 14:05 수정일 2020-08-01 23:05 발행일 2020-07-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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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E. 후설은 “모든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에포케(epoche)’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포케란 고대 그리스의 회의론자들이 즐겨 쓰던 용어로, ‘판단 중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멈춤’ 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뜻이다. 

그리스의 회의론자들은 어떤 사물 등을 판단할 때, 판단하는 사람이나 그 대상의 입장과 조건 등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중시했다. 때문에 일률적으로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르다 등의 판단을 쉽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매사에 쉽게 판단하지 말고, 가능하면 확실한 결론을 도출할 때 까지 판단을 보류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E.후설은 에포케의 정의에 대해 ‘틀린 판단을 내리지 않기 위해 먼저 눈으로 대상을 괄호로 묶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섣부른 결론을 내기 전에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보내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이른바 ‘현상학적 환원(還元)’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자연스러운 판단을 그대로 진실이라 하지 말고 일단 판단을 보류해 보라고 권했다. 그에 앞서서는 근세 철학자 R.데카르트도 ‘방법적 회의’라는 저서에서 에포케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