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클릭 시사] 게토 장벽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0-07-01 14:04 수정일 2020-07-01 14:05 발행일 2020-07-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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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장벽

유대인들은 16세기까지 많은 박해와 차별을 받았다. 특히 집단을 이루며 사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유대인들은 당시 음탕함과 탐욕, 배신의 아이콘이었다.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도 유대인들의 짓이라는 괴 소문이 돌 정도였다.

게토란 ‘공작소’라는 뜻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한꺼번에 몰살하려 이들을 격리해 수용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게토다. 게토 장벽이란 이곳에서 유대인 탈출을 막기 위해 세운 장벽이었다. 가장 많은 유대인을 수용했던 곳이 폴란드의 바르샤바 게토였다. 가로 세로 3㎞ 정도에 40만 명을 거둔, 사실상의 수용소였다. 2년 만에 사망자가 8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핍박과 배고픔으로 한계에 이른 게토 유대인들은 급기야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했던 유월절 전날인 1943년 4월 19일에 일제히 봉기를 일으킨다. 하지만 폴란드 총독부의 탱크에 거사는 무산되었고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히틀러는 패망했고, 1948년 4월에 게토 봉기 5주년을 맞아 이곳에 ‘유대인 영웅비’가 세워졌다. 1970년 11월 7일에는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가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함으로써 동·서독 통일의 교두보가 마련된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