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칼럼] 출산 후 말못할 고민 '변실금', 전문 치료가 필요한 이유

원대연 서울송도병원 과장
입력일 2020-06-23 07:20 수정일 2020-06-23 07:20 발행일 2020-06-2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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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연 서울송도병원 과장. (사진제공=서울송도병원)

출산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고귀한 과정이지만, 역설적으로 산모에게는 골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손상을 야기할 수 있다. 자연분만 과정에서 골반으로 상대적으로 큰 아기가 밑으로 밀고 나오면서 질, 회음부, 그리고 항문 괄약근까지도 손상을 입을 수 있다. 한 연구에서는 9만9000명의 출산을 검토한 결과 자연분만으로 인한 항문 괄약근 손상 위험도가 6.3%로 나타나기도 했다.

항문 괄약근은 단순한 기관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근육이다. 변이 찔끔찔끔 세지 않도록 변을 참아주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배변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골반 근육과 항문 괄약근이 협동해 변을 배출해내는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 항문 괄약근이 많이 손상된 경우 변실금 증상이 악화한다. 골반저 그리고 회음부 근육이 손상되면 변이 장 끝자락에 도달했지만 잘 배출하지 못하는 출구기능장애형 변비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출산 후유증이 출산 직후 나타나기도 하지만, 10년 이상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나기도 한다. 40대 이후로 누구나 근육 기능이 노화 과정에서 약해지기 때문이다. 자연분만 경험이 있는 여성의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변비, 변실금 증상은 매우 다양하며 근육, 신경 기능의 실제적인 문제를 내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출구기능장애형 변비의 초기 증상에는 화장실에 앉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잔변감이 생기거나, 항문 폐쇄감이 있다. 변실금 초기 증상으로는 변을 화장지로 여러 차례 닦아도 변이 계속 묻어 나오기도 하며, 변이 깨끗하게 닦이지 않아 항문이 가렵기도 하다. 배변 욕구가 생기면 변이 나올 것 같은 절박감에 화장실을 급하게 가기도 한다.

출산 과정을 통해 변비, 변실금이 생긴 경우에는 대장항문외과 전문의 전문진료가 도움이 된다. 정확한 진단 과정을 통해 근육 손상 정도를 확인하고, 변비 또는 변실금을 악화시킬 수 있는 숨겨진 원인이 함께 동반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일차적으로 약물치료, 물리치료, 골반저 근육 강화 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다. 이런 보존적인 치료만으로도 80% 이상 변비, 변실금 증상이 호전될 수 있어서 치료율은 높은 편이다.

출산에 의한 근육 손상이 심하면 수술을 통해 괄약근 복원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수술을 통해 출산 전 상태로 근육 손상을 온전하게 복구하고, 괄약근 기능이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신경 문제에 의해 항문 괄약근 기능이 떨어지면 신경을 자극하는 작은 신경 자극기를 삽입하는 시술도 선택적으로 가능하다.

출산 후 변비 또는 변실금은 단순한 증상이 아닌 건물 골조가 일부 무너진 것 같이 구조적인 문제가 동반될 수 있기 때문에 전문 진료를 받아야 한다. 변비와 변실금을 질환과 관련된 증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인식이 전문 진료를 막는 큰 장벽으로 보인다. 배변 활동은 골반의 건강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진단해서 정확히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대연 서울송도병원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