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생각하다보니 상가 조문이 망설여진다. 올해 우리 나이로 83세다. 젊은 사람 눈에는 ‘꼬부랑 노인’이겠지만 막상 100세 시대를 살다보니 아직 그렇게 늙었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친목회, 경로당 등 이런저런 모임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는 젊은이들 못지않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딱하나 마음에 걸리는 자리가 있다. 바로 상가(喪家)조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조문하러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가까운 지인이 돌아가셨다면 찾아뵙는 것이 도리지만 팔십이 넘으니 막상 가도 유가족이나 다른 문상객들이 불편해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동년배나 친구 고인의 문상도 껄끄럽긴 마찬가지다.
가 보면 대부분 조문객이 호상(好喪)이라며 웃고 떠들어 대는데 내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내 친구, 내 또래 지인의 죽음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그런 자리에 다녀오면 몇일간 우울해진다. 나만 그런 고민을 하는게 아니다. 한 친구는 “70세 넘어서는 아예 장례식장 다니는 걸 끊었다”고 털어놨다. 상주들도 “나이 드신 분이 오시느라 고생하셨다”고 하지만 어쩐지 걱정하는 눈치고, 문상객들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오히려 불편만 주는 것 같아 장례식장은 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고령화 시대에 조문 예법을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올해 백수를 맞이한 김형석 전 연세대 명예교수의 조문 원칙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예로부터 한국 문화에는 지인의 경사(慶事)는 지나쳐도 애사(哀事)는 꼭 챙겨야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문이다. 조문을 통해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관계의 기본 예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보다 젊은 사람 장례는 안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칫 유족에게 더 큰 상실감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꼭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조문객이 적은 시간을 택해가야 다른 조문객들이 덜 부담스럽다.
꼭 가야할 자리가 아니라면 가급적 아들을 통해 조문하고 전화로 위로의 말을 전한다. 호상(好喪)이라는 표현도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이의 장례라도 가족과 친구들에겐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나 역시 이 원칙을 따라하기로 마음먹고 동년배 지인들에게도 권할 생각이다.
장원근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