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물꼬 튼 무대 영상화 가능성, 선결 과제는?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4-25 14:00 수정일 2020-05-29 14:37 발행일 2020-04-25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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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무대 영상화의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예술의전당 ‘삭 온 스크린’ 제작 풍경(사진제공=예술의전당)

공연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의 세심한 표정이 클로즈업되는가 하면 무대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온다. 오감을 공격하는 ‘관크’(觀critical, 공연 중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이르는 말)로 인한 방해요소도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으로 관객들을 직접 대면해야하는 공연계는 위기를 맞았다. 전세계 뮤지컬·연극의 양대 ‘성지’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는 셧다운 사태를 맞았다. 지난 20일(한국시간)에는 캐나다 출신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 닉 코데로(Nick Cordero)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다리를 절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기감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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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의 온라인 콘서트 시리즈 '모먼트 뮤지컬'(Moment Musical)에서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 수록곡을 선사한다(사진제공=DG)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의 앙상블 배우 확진으로 한 차례 위험한 고비를 초래했던 한국의 공연가(街) 역시 취소·연기·잠정중단 등을 반복하며 코로나19 사태를 관통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관통하면서 연극·뮤지컬 뿐 아니라 클래식, 국악 등 전통공연 등이 유튜브, 네이버TV 등을 통해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되면서 무대 영상화에 대한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의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정동극장, 롯데콘서트홀,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등 뿐 아니다.

물론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The Metropolita Opera), 빈 국립오페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이 무관중 생중계 혹은 이전 공연들의 중계 스트리밍을 제공하면서 무대 영상화의 긍정적 효과들이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 아마존 등 글로벌 OTT(Over The Top) 서비스 플랫폼들도 영상화된 무대작품들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 “공연은 계속 돼야 한다”는 아티스트들의 열망을 충족시키는가 하면 아카이빙, 접근성 완화로 인한 공연 향유층의 확대, 유통 다각화로 수익창출 등으로 공연 시장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급부상하고 있는 무대 영상화는 가능성과 선결 과제가 공존하는 양날의 검이다. ◇새로운 콘텐츠 소비 행태와 신규 관객 유입, 아직은 걸음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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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생중계를 결정한 ‘양준모의 오페라 데이트’(사진제공=정동극장)

2013년부터 영상화사업인 ‘삭 온 스크린’(SAC On Screen)을 진행해온 예술의전당 영상문화부 신태연 제작PD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다양한 콘텐츠들이 새롭게 소비되고 있다”며 “공연 예술 영상화 프로그램도 충분히 많은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공연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저희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결과와 영향력에 힘입어 제작진, 출연진, 공연예술기관 등에서도 문화예술 콘텐츠 영상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더욱 빠르게 이해하는 기초가 되어 앞으로 더 활성화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무대의 영상화는 한번으로 사라지고 마는 무대의 아카이브 기능, 새로운 콘텐츠 소비 행태이면서도 그간 공연예술을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무대 영상을 관람토록함으로서 신규 관객 유입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한국 공연계의 특성 중 하나는 적정 수준의 N차 관람 관객들에 의해 지탱되고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에 공연계는 “공연 관람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 영상으로 간접경험을 함으로서 공연장을 직접 찾게 되기를, 그로 인해 공연 향유층이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신 PD는 “지금까지는 시간, 공간, 지역 등의 문제로 문화예술을 쉽게 접하기 힘든 지역과 관객들, 공연장 관람이 익숙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좀 더 편하게 공연 관람의 경험을 제공하고자 비영리사업으로 제작돼 소비돼 왔다”며 “코로나19 사태로 공연예술영상화가 호응을 얻고 좀 더 발전하게 된다면 유통 다각화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무관중 생중계로 ‘힘내라 콘서트’(이하 힘콘)를 진행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의 오정화 공연기획팀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로 제대로 된 시스템은 없다”며 “그럼에도 예측 불허의 요소가 많은 공연시장에서 무대 영상화는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시스템화, 활성화 노력으로 본격화를 위한 단계별 플랜 구축이 필요해 보인다”고 의견을 전했다.

◇콘텐츠 완성도, 재원 확보, 플랫폼 구축…고민은 현재진행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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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 온 스크린’으로 제작돼 상영된 연극 ‘페리클레스’(사진제공=예술의전당)

무대 영상화 가능성의 실현을 위해 선결해야할 과제들도 산적하고 있다. 콘텐츠 완성도와 재원 확보, 예술가와 창작진, 스태프들에 대한 보상 체계 마련 등이 그것이다.

무대 조명 그대로를 사용함으로서 배우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가 하면 음향은 웅웅거리기 일쑤다. 아무리 극이 던지는 메시지가 좋아도 관람이 어려운 질의 영상이나 생중계라면 관객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이에 공연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영상 콘텐츠로서 소비될만한 수준의 질을 유지해야 한다.

다수의 공연관계자들은 “공연 영상화는 단순 녹화나 생중계가 아닌, 공연에 맞는 기획과 사전 콘티, 카메라워크 등이 가능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토로한다. 결국 이는 비용, 특화된 전문가 확보 문제로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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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관중 생중계된 연극 ‘흑백다방’(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지난 1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무관중 생중계된 연극 ‘흑백다방’에는 지미집(크레인 같은 구조 끝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아래에서 리모컨으로 촬영을 조정하는 무인 카메라)을 포함해 6대의 카메라가 동원됐다.

200여석 규모의 소극장 영상화 작업이 이렇다면 중극장, 1000석이 넘어가는 대극장 콘텐츠들의 영상화는 적지 않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억대를 훌쩍 넘기는 비용에 소규모 창작단체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지경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연 영상물 시청은 무료이기 때문에 들인 비용에 비해 수익창출은 아직 요원한 상태다. 이에 콘텐츠의 영상화 작업은 국공립극장 및 단체 등의 주도로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오정화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장은 “완성도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결국 기업들의 스폰서십, 펀딩 등을 풀어가야할 것”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이어 “현재 ‘힘콘’도 장기화를 검토 중‘이라며 ”현재는 서울시 지원금으로 진행 중이지만 향후에는 기업의 스폰서십 및 펀딩,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공연계 돕기 모금 캠페인 등 자구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8년 동안 공연 영상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예술의전당은 “유료화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귀띔했다. 예술의전당 신태연 PD는 “지금은 누구라도 충분한 재원으로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공연 영상 산업 또한 좀더 발전해 유료화 등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될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된다면 재원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어 “지금 제작 중인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를 통해 공연 영상화 유료화의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한다”며 “이런 검토에는 상업적인 사용을 허가하는 계약 등이 선행돼야 하며 비영리 목적의 영상과는 다른 계약을 진행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늙은 부부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돼 현재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장편 비경쟁 부분에 출품돼 상영될 예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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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영상화 유료화와 영화 제작 중인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사진제공=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은 ‘힘콘’의 몇몇 공연을 5G VR 콘텐츠화로 현장감을 강화할 계획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오정화 팀장은 “LG유플러스와 협력해 VR로 촬영 중”이라며 “평면적 영상이 아닌 입체감을 살리며 사방을 볼 수 있는 형태의 공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힘콘’ 중 밀레니엄오케스트라의 ‘오페라 옴니버스’가 24일 유플러스에서 공개됐고 이후 ‘포르테 디 콰트로’(4월 27일 19시 30분), 서울시무용단의 ‘놋’(N.O.T, 5월 18일 예정)이 서비스될 예정이다. 문제는 유플러스 5G 서비스 가입자만 이용할 수 있는 제약이다.

이에 공연의 영상화 본격화, 유료화 등을 위해서는 상영 플랫폼 구축도 풀어야할 숙제다. 유튜브, 네이버TV 등은 무단 복제 및 불법 배포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신태연 PD는 “문화예술만을 위한 넷플릭스와 같은 통합된 플랫폼과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등을 적용해 불법 복제 방지에 힘써야 한다”며 “공연 영상화에 투입했던 예산, 공연 제작비 등을 회수 할 수 있는 유료화 정책이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술가·창작진·스태프들의 정체성과 보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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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화 작업 중인 ‘놋’(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공연의 영상화로 배우, 창작진, 스태프 등은 새로운 경험과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보다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맞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클로즈업, 영상에 맞는 동선 다시 짜기 등에 정체성이 흔들리기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는 배우 뿐 아니라 창작진,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 공연 관계자는 “클로즈업, 수많은 카메라들, 그에 맞춰 변화된 동선들 등이 배우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일”이라며 “그간 무대 배우·창작진·스태프 등은 매회 한번으로 끝나는 무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하지만 영상화가 된다면 또 어떻게 변주해야하는지를 고민하고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이들의 정체성과 보상 문제로 이어진다. 그간 무대 배우 및 창작진, 스태프들은 회당 페이로 계약을 해 왔다. 반면 언제 어디서나 상영될 수 있는 영상 배우나 창작진, 스태프들은 재방송, 재전송, 온라인 스트리밍 등의 가능성을 내포한 페이에 2, 3차 가공에 대한 대가는 따로 책정하고 있다.

무대에서 활동하다 TV, 영화 등으로 진출한 한 배우는 실제로 100배에 이르는 출연료 차이를 겪기도 했다. 영국 역시 영상과 무대 스태프의 페이는 몇배수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무대 영상화에 따른 배우 및 창작진, 스태프들의 보상 문제는 한국만이 아닌 전세계 공연계가 풀어야할 숙제기도 하다. 배우조합이 있는 웨스트엔드는 배우들만 영상 스트리밍이 될 경우 출연료의 일정 정도를 따로 지급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예술의전당 ‘삭 온 스크린’의 보상 문제에 대해 신태연 PD는 “실제로 저작권 및 초상권료가 영상화 제작 예산의 50%를 차지한다”며 “예술의전당 자체 기획 작품인 경우는 출연자 및 창작 스태프와 공연 출연 계약 단계부터 공연 영상화에 대한 부분에 대해 협의하고 계약 조항으로 넣어 저작권 및 초상권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부 단체의 공연일 경우는 예술의전당과 제작사와의 계약으로 진행되며 해당 단체에서 다시 관련자들과의 세부 계약으로 다시 풀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무대 영상화 대부분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면서 궁여지책이었다. 더불어 무대 영상화 콘텐츠 대부분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초보 단계의 방식이다. 그럼에도 위기는 공연계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회를 공연산업 발전과 진화로 이끌기 위한 자구책 마련과 논의가 이뤄져야할 때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