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요즘 젊은이들은 모른다

손현석 명예기자
입력일 2020-03-13 15:00 수정일 2020-03-13 15:07 발행일 2020-03-1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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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손현석기자
손현석 명예기자

하늘을 믿는 노인(信天翁)이라 불리는 새가 있다. 뒤뚱거리며 잘 날지 못하는 새. 사람들은 이 새를 ‘바보새’라고 부른다. 그러나 폭풍이 무섭게 부는 날, 모든 새들이 무서워서 바위틈에 숨느라 요란할 때 이 바보새는 절벽을 오른다. 절벽 위에 우뚝서서 무섭게 불어오는 폭풍을 타고 큰 날개를 펼친다. 3m나 되는 날개를 펴고 가장 높게, 가장 멀리 활공한다.

일본 도리시마 섬에서 분포된 이 새의 진짜 이름은 ‘알바트로스(Albatross)’이다. 바보처럼 뒤뚱거리며 천대받던 일들을 한순간에 다 잊고 새 희망을 안고 폭풍 속을 힘차게 날아오르는 알바트로스가 나는 좋다.

엊그제는 신문 앞 머리기사에 ‘가쁜 숨 내쉬던 아버지에게 병상 하나 못 내준 대한민국’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온 나라가 코로나19 사태로 온통 정신을 차릴수 없는 이때 병상을 구하지 못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낸 자식의 통곡을 듣는 듯 가슴이 저려온다.

내 나이 80에 뒤돌아 보면 우리네 부모는 너무 가난하게 살았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인고의 세월이 빛바랜 훈장처럼 얼굴에, 손등에 거북이등처럼 깊게 패인 주름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것이 어린 내게는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되돌아보면 우리들 부모의 자부심이었고 가장 자랑스러운 소중한 자산이었다.

총알이 빗발치고 생사를 알수 없던 전장에서,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땡볕에 쉴틈 없이 농사를 짓던 논밭에서, 칠흑 같은 어두운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며 그물을 건져 올리던 자랑스러운 주름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모른다. 우는 아이 등에 업고 떠나가는 피난길에 허기진 배 채우느라 아카시아 꽃 한주먹 따서 입안 가득 넣고 씹어 삼키던 시절을 젊은이들은 모른다. 맛없다고 짜증 내는 어린 아들 입맛 맞추느라 늙은 어미가 어렵게 구해온 사카린을 조금 넣고 한 솥 끓인 보릿가루 죽을 온 식구가 둘러 앉아 그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맛나게 먹던 그 시절을 지금 젊은이들은 모른다. 가끔 부모를 외딴 섬이나 오지에 버리고 가는 비정한 자식들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다. 경찰들이 와서 신분을 물어도 노인들은 집주소나 전화번호를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행여 버리고 간 자식에게 해가 될까 입다물고 모른다고 손사래치는 부모의 마음을 젊은이들은 모른다.

세월이 아무리 험악해도 부모는 자식을 못 버린다. 세상이 열두번 바뀌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 오직 자식을 위해 희생한 부모 세대가 늙고 병들어 힘없을 때 부모를 모시고 정성껏 공양하는 그런 시절이 추억만은 아니길 간절히 바래본다.

노인 세대여 희망을 잃지 맙시다. 곧게 뻗은 소나무보다 굴곡진 환경속에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등 굽은 소나무가 더 멋있지 않던가. 척박한 바위틈 비집고 몇백년을 살았다는 키작고 단단한 그 소나무의 당당한 위용이 당차 보이지 않던가. 깊게 패인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의 주름이 반짝반짝 빛나는 훈장처럼 자랑스러울 때가 있으리니 뒤뚱거리던 바보새가 커다란 날개를 펴고 창공을 힘차게 나르듯 우리도 날개를 활짝 펴 봅시다.

손현석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