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코멘트]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해금 명인 강은일 “나로서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는!”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2-14 19:00 수정일 2020-02-23 09:29 발행일 2020-02-1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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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름
‘오래된 미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해금 명인 강은일(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여자끼리 살 수 없으니까요. 남자랑 같이 살아야하니까요. 여전히 성폭력, 편견, 차별 등 여러 사건들이 있어요. 이는 여자만 노력해서 되는 부분이 아니죠. 사회적 인식도 바꿔야하고 남자들도 교육시켜야하거든요.”

‘오래된 미래: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2월 22~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준비 중인 해금 연주자 강은일은 “여자 이야기라서 남자 연주자들과 하고 싶었다”며 “함께 잘 살아보려고 노력해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전통부문에 선정된 ‘오래된 미래: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는 해금 명장 강은일을 중심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 작곡가였던 김성국, 미국의 도널드 워맥(Donald Womack), 콜롬비아국립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자 작곡가 모세 베르트랑(Moises Bertran), 영화음악·뮤지컬 작곡가 우디 박(Woody Park)의 새로운 곡들이 연주된다. 

SHAO창작산실_오래된미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오래된 미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해금 명인 강은일(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저 역시 아들이 있는 엄마로서 아들을 제대로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남자들과 더 많이 소통해야 하고 꾸준히 이야기돼야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극의 처음과 끝은 한진구 작곡의 ‘제망모가’가 장식한다.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가 지은 10구체 향가로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제망매가’(祭亡妹歌)의 ‘매’를 ‘모’로 바꾼 곡이다. 강은일의 아들이기도 한 한진구는 ‘제망모가’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떤 감정 느낄까를 상상하며 쓴 크로스오버 곡”이라며 “저에 대한 분노와 후회만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강은일을 제외한 작곡가는 물론 연주자들도 전원 남자다. 우디 박의 ‘4대’(4 Generations), 김성국의 해금과 피아노를 위한 ‘날개’, 모세 베르트의 ‘떠오른 기억들’(Imagined Recollections), 도널드 워맥의 ‘떠오르는 섬’(Islands Rising)을 강은일과 재즈 피아니스트 김윤곤, 퍼커셔니스트 박광현, 피리·태평소·생황 연주가 최소리 등이 연주한다. 

“남자 작곡가들, 연주자들 등이 여성에 대한 감수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었죠. 도널드 워맥 선생님은 처음 작곡을 의뢰했을 때 ‘왜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하느냐? 난 여성에 대해 잘 모른다. 여성 작곡가랑 작업을 하라’고 하셨어요. 하와이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엔 안하겠다고 하셨죠. 하지만 끝내 설득했어요.”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오래된 미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에 참여하는 작곡가들과 연주자들. 왼쪽부터 ‘제망모가’의 한진구 작곡가, ‘4대’의 우디 박 작곡가, 해금 명인 강은일, 재즈 피아니스트 김윤곤, 퍼커셔니스트 박광현(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도널드 워맥의 ‘떠오르는 섬’은 하와이와 제주도, 전혀 다른 공간에 위치한 섬의 창세신화에 주목한 작품이다. 화산의 여신 펠레가 킬라우에아 화산의 분화구에서부터 하와이 제도를 형성했다는 마담 펠레 신화와 거대한 여신 설문대 할망이 만들어낸 제주도 신화 그리고 하와이의 잘 알려진 토착노래 ‘Aia La O Pele I Hawaii’와 제주도의 민속음악 서우제 소리가 결합되고 어우러진다.

“하와이와 제주도가 어떻게 생겨났고 여성이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그 드넓은 대지의 힘들 그리고 깊은 내면의 여성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모리스 베르트의 ‘떠오른 기억’은 강강술래와 스페인의 전통춤 카타란 사르다나를 아우르며 우디 박의 ‘4대’는 EDM으로 풀어낸 춤곡으로 피아노와 퍼커션, 피리, 해금 등 전통악기와 서양악기가 크로스 앙상블을 선사한다.

김성국의 ‘날개’는 우리 음악이 가진 장점인 신명과 흥을 살려 축제자로서의 여성, 하루를 축제처럼 살아내는 여성의 모습이 표현된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제 딸에게는 ‘다 잘해야 한다’가 아니라 지금 너로서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그냥 나로서도 한점 부끄럼없이 자신감 있게 살아도 되는데 저는 늘 자신감이 없었거든요.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외모도 출중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모자란 실력을 채우려 허덕허덕 공부하곤 하는 데서 벗어나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에 대한 가치를 얘기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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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중 ‘4대’를 시연 중인 해금 명인 강은일(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명인 ‘오래된 미래’는 1집 음반 제목으로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에서 따왔다.  

이에 대해 강은일은 “학창시절 장학생으로, (KBS)국악관현악단원으로 잘 지내다 그만두게 되는 계기가 생겼고 맨땅에 헤딩하던 어려운 시절에 읽었던 책”이라고 설명했다.

“그 책을 보고 나서 제 해금을 보는데 ‘이 악기가 오래 전부터 있던 나의 미래구나’를 깨달았죠. 그때부터 ‘오래된 미래’를 모토로 가지고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꿈꿔왔고 꿈꿀 ‘오래된 미래’는 “전통적인 여성, 어머니, 모성은 말없이 혼자 인내했지만 이제는 표현해야 하는 세상”이다.

“피해는 거의 대부분 여자들이 당하고 있어요. 저 역시 그랬고 여전히 여성을 향한 폭력, 차별 등이 많거든요. 조금씩 바꾸고 싶고 그런 얘기들, 여성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받아들여질 때까지 ‘나는 어떻다’ 얘기하고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음악이다 보니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얼마나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곤 여성을 향한 여전한 차별과 편견, 폭력에 대한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여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이 여전히 너무 많아요. 그런 것에 대해서도 같이, 계속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시킨다고, 단기간에 쉽게 해결될 문제들은 아니어서 작게나마 이야기하면서 어머니를, 아내를, 자식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들이 넓어지다 보면 사회도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