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더컬처]뮤지컬 ‘빅 피쉬’ 박호산 “나를, 배우를, 내 아버지를 닮은 에드워드의 슬프지만 찬란한!”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1-25 23:00 수정일 2020-01-25 23:11 발행일 2020-01-25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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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산
뮤지컬 ‘빅 피쉬’ 에드워드 블룸 역의 박호산(사진제공=라이트하우스)

“저는 처음 공연을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전혀 다름이 없어요. 계속 찡한 장면이 찡하고…. 지금은 앙상블들의 힘으로 가는 것 같아요.”

뮤지컬 ‘빅 피쉬’(2월 9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이야기꾼 에드워드 블룸(박호산·남경주·손준호, 이하 관람배우·가나다 순)으로 분하고 있는 박호산은 베테랑 배우들로 구성된 앙상블 배우들을 극찬했다.

“앙상블 배우들이 친구들이 돼주고 마을 사람이 돼주고 고등학교 동창들이 돼주고 정말 낯선 사람들이 돼 주는 느낌들이 점점 더 좋아지고 깊어지고 있거든요. 우리 앙상블 배우들의 평균 나이가 35세예요. 발레, 현대무용, 연기 등 특기로나, 실력으로나, 경력으로나 베테랑인 이들이 든든하게 자리를 잡아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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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빅 피쉬’ 에드워드 블룸 역의 박호산은 베테랑 앙상블 배우들을 극찬했다(사진제공=CJ ENM)

지컬 ‘빅 피쉬’는 다니엘 월러스(Daniel Wallace)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존 어거스트(John August)가 대본을, 작곡가 앤드류 리파(Andrew Lippa)가 넘버를 꾸린 작품이다. 2003년 팀 버튼 감독, 이완 맥그리거 주연 영화로 개봉돼 사랑받았던 작품으로 이야기꾼 에드워드와 ‘팩트’를 쫓는 기자인 아들 윌(이창용·김성철)의 갈등, 부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아내이자 엄마 산드라(김지우·구원영)가 풀어가는 가슴 따뜻한 가족 이야기다. 

CJ ENM 글로벌 프로젝트로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 2017년 영국 웨스트엔드에 이어 지난해 12월 4일 한국에서 초연됐다. 한국 프로덕션은 스캇 슈왈츠(Scott Schwartz) 연출, ‘록키호러쇼’ ‘베르나르다 알바’ ‘마마 돈 크라이’ 등의 김성수 음악감독이 힘을 보탰다.

“재작년에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는 ‘이걸 뮤지컬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팀 버튼 영화인 줄만 알았더니 원작소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원작을 읽어보고 너무 좋았어요. 부자지간이 반목하다가 사랑을 깨달아가는 따뜻한 과정에 끌렸고 욕심이 났어요. ‘형제는 용감했다’처럼 형제가 엄마, 아빠의 뜻을 알아가는 그 느낌이었죠. 가족극으로는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고 따뜻하지만 힘들겠구나 싶었어요.”

◇“나를, 배우를, 내 아버지를 닮은” 에드워드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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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weight: normal;">뮤지컬 ‘빅 피쉬’ 에드워드 블룸 역의 박호산(사진제공=CJ ENM)
“에드워드는 복잡한 사람이 아니에요. 가부장적이지만 꼰대는 아닌 아버지죠. 단정이 빠른 가부장적인 아버지지만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는 꼰대는 아니거든요. 네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내 삶은 이렇다고 얘기하는 사람이죠.”

그리곤 “그걸 과장해서 얘기하긴 한다”며 “내 얘기를 듣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배우와 닮아 있다. 그래선지 연기하는 배우와 비슷해지는 캐릭터“라고 덧붙였다.

“에드워드는 사실에 기초해서 과장된 이야기를 만들어요. 바닷가 마을에서 첫사랑을 만나 한눈에 반해버렸고 키스까지 하게 된 사실은 상상이 더해져 인어이야기가 되죠.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지는 상상을 아들에게 얘기해주는 거예요. 아들 윌은 그 이야기가 신기하고 재밌다가 어느 순간 실망감을 가지게 되겠죠. 아이가 자라 산타클로스의 실체를 알게 되는 것처럼요.”

사실만을 전해야 하는 기자가 된 윌에게 아버지는 실망스러운 허풍쟁이일 수도, 박호산의 표현처럼 “창피하거나 주책처럼 보일지도 모를” 존재다.

“아버지의 진짜 의도, 이유를 이해 못하고 부닥치죠. 그러다 죽기 직전 ‘네가 한번 만들어봐’라는 아버지의 소원으로 이야기를 꾸며보면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이야기를 만들어주죠. 사실에 기초해 과장하는 아버지스럽게.”

에드워드와 윌의 관계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다. 배우이자 아들이며 아버지인 박호산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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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빅 피쉬’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던 에드워드 블룸 역의 박호산(사진제공=CJ ENM)

“6, 70대 노년의 모습은 제 아버지에게서 많이 가져왔어요. 에드워드 블룸이랑 비슷한 면이 있거든요. 말투도 아버지한테서 차용했어요. 아버지가 (‘빅 피쉬’를) 보시고는 아무 말씀도 안하셨는데 잘 보신 것 같아요. 눈이 벌게지셔서는 저만 한참을 바라보다가 가셨죠.”

그렇게 박호산은 에드워드를 닮은, 윌처럼 어려서는 믿었고 나이가 들면서는 분명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이었던 아버지의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다.

“저희 아버지가 키나 덩치가 크지도 않은데 중고등학교 때 전교에서 주먹으로 유명하셨다는 거예요. 큰 아버지가 맞고 오면 가서 정리해주고 친구들이 서로 가방을 들겠다고 난리였다고. 어려선 믿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정년을 맞은 아버지 친구분들이 집에 놀러 오셔서는 ‘우리가 네 아버지 가방을 얼마나 들었는지 알아?’ 하시는데 과장은 있지만 거짓말은 아니구나 싶었죠.”

◇관계에 주목하는 박호산의 에드워드, 안쓰러워하는 이창용, 냉정한 김성철의 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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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빅 피쉬’ 중 에드워드 역의 박호산(가운데), 아내 산드라 김지우(왼쪽), 아들 윌 이창용(사진제공=CJ ENM)

“사람마다 인격이 다른 것처럼 세 에드워드의 강조점이 달라요. 저는 관계에 주목하고 있죠. 이 작품은 어쩌면 아들인 윌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같아요. 무대 위 에드워드는 아들 윌이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상상하는 모습이거든요.”

이어 박호산은 “그래서 (윌을 연기하는 배우들) 그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에 아들 윌을 연기하는 배우와의 호흡에 따라 전혀 다른 극이 되기도 한다.

“배우마다 기술방법이 달라요. 배우 100명이면 연기법이 100가지나 마찬가지일 정도죠. (이)창용이는 아버지를 안타까워하고 안쓰러워 하는 윌이에요. (김)성철이는 좀더 냉정해요. 아버지 꼭대기에서 자신이 인정해줘야하는 윌이죠. 그래선지 (시작과 끝의) 낙차는 성철이가 크고 창용이는 감동이 차곡차곡 쌓여요.”

그리곤 아내 산드라 역의 김지우, 구원영에 대해서는 “둘 다 따뜻하고 개구쟁이에 노래 엄청 잘하는, 기복이 없는 배우들”이라고 신뢰를 드러냈다. 박호산은 ‘빅 피쉬’를 “윌의 머릿속 이야기”라며 “윌의 머릿속에서 아버지 에드워드는 항상 당당하고 발랄하며 재치 있고 말을 잘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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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빅 피쉬’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던 에드워드 블룸 역의 박호산(사진제공=CJ ENM)

“윌이 생각하는 아버지에 초점을 맞춰서 연기하고 있어요. 침대 위 노년의 아버지가 그럴만한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픈데도 농담을 던지고 주책없이 앞에 나서고 미안한 건 미안하다 인정하고 화를 낼 때는 화를 내는 그런 사람이요.”

◇행복해지는 대사 “칼이에요. 많이 닮았네요.”

“칼이에요. 많이 닮았네요.”

박호산은 “꿈과 상상의 연속인 이야기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현실”이라며 장신의 칼과 윌이 조우하는 마지막 장면을 최고로 꼽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사실적이고 가장 행복해지는 대사가 ‘칼이에요. 많이 닮았네’거든요. 윌이 실제 아버지의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이죠. 10미터 거인은 아니지만 거대증을 앓는 칼이라는 친구가 실제한다는 걸 눈치 채요.”

그리곤 “곱게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지만 장난스러울 것 같은 형제들 등의 배웅을 받으며 에드워드가 커다란 물고기가 돼 사라지는 장례식 장면이 너무 좋다”며 “마지막 그 장면이 밖에서 보면 그렇게 찡하다”고 덧붙였다.

“왜 굳이 마지막이 ‘빅 피쉬’였을까를 생각해보곤 해요. 상상 속에서의 자유로움을 상징하고 싶었으면 훨훨 날 수 있는 빅 버드(새)도 있고 동물 중 최강자인 호랑이도 있는데…. 가족의 장소인 ‘강’을 떠올렸죠. (에드워드의) 농부 아버지 얘기는 틀만 있고 나머지는 다 애드리브였어요. 말이 없고 무조건 미안하다고 하는 아버지가 그 강가에 서 있다는 상상을 해요. 그래서 그 강이 가족에게는 중요한 장소죠.”

◇아들 윌의 상상, 그 마지막 강가에서 함께 울어주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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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빅 피쉬’ 에드워드 블룸 역의 박호산(사진제공=CJ ENM)

“에드워드가 아버지에게 처음 낚시를 배운 곳이고 산드라에게 청혼하고 결혼식을 하고 윌에게 낚시를 가르쳐준 곳이기도 하죠. 에드워드는 윌의 이야기에 의해 그 강에 상주하는 큰 물고기가 된 거예요. 아버지가 물고기가 되는 자리를 봐주는 아들 윌의 상상이라니…너무 멋진 상상이죠.”

이어 “평생을 만나온 내 친구들이 한곳에 모여서 제 마지막을 함께 해주는 장면은 연습할 때부터 울지 않은 날이 없다”며 “연습실에서도 같이 울어주던 사람들이 있으니 전 에드워드만큼 행복한 배우”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말 힘들기는 해요. 연습실부터 그랬어요. 계속 움직이다 보니 하루에 런스루(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연습) 두 번도 힘들더라고요.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고통이 아닌 행복함, 미안함, 감사하는 마음으로 채워지는 시간들이었어요. 감동의 눈물이자 감정적으로 후련하게 터뜨리는 희열이죠.”

이렇게 전한 박호산은 “사실 넘버는 어렵다. 연대 성악과를 나온 (손)준호, 30년 뮤지컬 경력의 (남)경주 형에 비하면 진짜 힘들게 하고 있다”며 “다행인 건 뮤지컬은 음악적인 부분 뿐 아니라 대사와 연기력도 중요한 장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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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빅 피쉬’ 에드워드 블룸 역의 박호산(사진제공=라이트하우스)

“안되는 걸 되게 하지 말고 되는 걸 극대화하자 생각했어요. 솔직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기죽지 않기로 했죠. 노래를 잘하는 준호가 많이 도와줬어요. 박자도, 음정도 어려웠는데 준호가 녹음을 해서 파일을 보내줬죠. 동선은 제가 주로 짜고 움직였어요. 제가 앞에서 움직이면 경주 형이 심판(?)을 봐주고 살을 붙이고…세 에드워드가 역할분담을 확실하게 했어요.”◇인생작 ‘빅 피쉬’, 내 마지막엔…

“제 인생작 같아요. ‘빅 피쉬’는 저랑, 제 아버지랑 많이 닮았고 크게 뭘 하기 보다 땀을 많이 흘리면 되는 작품이거든요. 캐릭터 분석 보다는 동선, 감정 연기 등 디테일에 더 신경 쓰면서 탄탄하게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죠.”

이어 “그런 과정에서 사랑스러워지는 작품”이라고 표현한 박호산은 ‘빅 피쉬’를 “인생작”이라고 꼽았다. 그리곤 “슬프지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며 그 매력을 “찬란한 슬픔”이라고 표현했다.

“살아오면서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의 마중 속에서 마지막을 맞는 에드워드를 통해 잊고 있던 친구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시길 바라요. 저 역시 마지막에는 저 나름의 강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강가에는 제가 그 동안 했던 배역들이 나와 있었으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