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관객들을 ‘안절부절’ ‘낯설게’ 하는… ‘위대한 개츠비’ ‘시적극장’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1-08 07:00 수정일 2020-01-08 17:45 발행일 2020-01-0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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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작소] 기존의 형식 깬 '위대한 개츠비' '시적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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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사진제공=마스트엔터테인먼트)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하게 된다. 연기하는 배우가 친근하게도 관객들의 손목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는가 하면 조근 조근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내용은 분명 익숙한 문학작품인데 형식에 따라 매우 낯선 극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어떤 연극은 이야기 흐름 중 갑자기 시를 읊거나 시적인 요소들로 채운다. 그렇게 온전히 극에 집중한 관객들이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이 같은 공연들은 관객들이 극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애를 쓰는 것과는 달리 이야기에 몰입을 방해하느라 안간힘(?)이다. 

[위대한 개츠비] 공연사진_강상준, 김사라(제공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사진제공=마스트엔터테인먼트)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2월 28일까지 그레뱅뮤지엄 2층 개츠비맨션)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고전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1920년대 미국의 화려한 황금기이자 재즈시대를 배경으로 지독히도 가난했던 제이 개츠비(박정복·강상준, 이하 관람배우 우선)의 이야기다.  

돈이 없어 첫사랑 데이지 뷰캐넌(이서영·김사라)을 잃었다고 굳게 믿은 개츠비는 닥치는대로 돈을 모아 신흥부자로 급부상하며 매일 밤 광란의 파티를 주최한다. 

신흥부자와 전통적인 부자들을 잇는 이는 채권딜러 닉 캐러웨이(이기현·마현진)이다. 그는 이 작품의 이야기를 이끄는 내레이터이기도 하다.  

공연장부터 익숙하지 않다. 이제는 신인가수 ‘유산슬’로 더 핫해진 유재석, 김연아, 마릴린 먼로, 조지 클루니, 이민호, 김수현, 지드래곤, 현빈 등 한류스타와 스포츠 스타들의 밀납인형들로 그득한 프랑스 왁스 뮤지엄에 개츠비의 멘션을 꾸렸다. 

재즈 선율과 찰스턴 댄스, 샴페인, 화려한 플래퍼룩 등으로 무장한 ‘위대한 개츠비’는 배우들은 물론 관객들까지 중앙 댄스홀에 뒤섞여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개츠비와 데이지, 닉 등 7명 이상의 캐릭터를 따라 흩어지기도, 다시 모이기도 하며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극에 참여하게 한다.

중앙에서 시작된 극은 캐츠비, 데이지, 닉을 비롯해 전통부자로 데이지의 남편인 톰 뷰캐넌(이종석), 개츠비와 데이지를 만나게 해주는 골퍼 조던 베이커(홍륜희), 개츠비의 조력자 조지 윌슨(박성광), 그의 아내이자 톰의 불륜 상대 머틀 윌슨(장항희), 악명 높은 갱스터로 개츠비의 오른팔인 로지 로젠탈(김찬휘), 화려한 사교계를 아우르는 루실(이지은) 등이 관객들을 곳곳에 배치된 시크릿 룸으로 이끌며 진행된다. 

[위대한 개츠비] 공연사진_전체(제공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사진제공=마스트엔터테인먼트)

캐릭터들의 “함께 하시겠습니까?” “이제 그만 나가주시겠습니까?” 등의 제안에 “예스” 혹은 “노”로 대답하며 다양한 공간으로 흩어지거나 중앙홀에 모이는 관객들은 인물들의 친구가 되거나 스태프 혹은 단역으로 극의 일부가 된다.

경우의 수에 따라 수십 가지로 확장되는 이야기로 2015년 첫선을 보인 후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연기 베테랑들과 재기발랄한 신인 배우들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대응하며 이야기를 이끈다. 

극은 하나의 대형 파티이며 관객들은 그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이다. 그 공연이자 파티의 관객이자 손님들은 1920년대를 연상시키는 ‘드레스코드’와 배우들이 내민 손에 “예스!”를 외치며 기꺼이 잡을 수 있는 마음가짐만 챙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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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극장’(사진제공=시적극장)

‘시적극장’(1월 16, 17일 올림픽공원 K-아트홀)은 무대미술가 신승렬과 김혜림, 매체음악가 박승순, 사운드디자이너 베일리홍, 드라마터그 전강희, 프로듀서 김혜연으로 구성된 창작 그룹이자 획일화된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시적 순간들을 마주하는 상상과 해방의 공간을 설치극장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시적극장’이 추구하는 바는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 (Michel Foucault)가 주창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현실화된 유토피아)에서 찾을 수 있다.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극 중 인물들과 장면 사이에 느닷없이 시가 배치돼 이질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단순히 시를 읊는 것만이 아닌 움직임, 빛, 소리, 침묵 등으로 표현된 시적 순간들을 극 흐름 속에서 ‘일시멈춤’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극은 흐름과 일시멈춤을 반복하며 상황을, 그 상황 속에 멈춰 선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감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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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극장’(사진제공=시적극장)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곤 투모로우’ ‘차미’ ‘씨왓아이워너씨’, 연극 ‘비 BEA’ ‘나무 위의 고래’ 등을 개발한 우란문화재단이 2017년 ‘시야 플랫폼“ 리처시 랩’ 프로그램을 거쳐 개발하고 무대화한 작품이다.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과 시선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 ‘시적극장’은 빛과 소리, 움직임, 침묵 등으로 채워진 공간에 서 있는 관객들에게 어쩌면 낯설지도 모를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발견하고 감각하며 돌아볼 수 있는 순간들을 제공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ARKO)의 아트앤테크매칭챌린지 융복합무대기술 매칭 지원사업으로 진행되는 2020년 ‘시적공간’은 2018년 초연당시 블랙박스(변형이 자유로운 상자형 공간)에서 아레나형(객석이 무대를 360도 둘러싼 형태)으로 변형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