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3가지색 고흐…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전시 ‘빛의 벙커’展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1-07 07:00 수정일 2020-01-07 12:23 발행일 2020-01-0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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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작소] 빈센트 반 고흐 주제로 한 뮤지컬·영화·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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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색 고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빛의 벙커: 반 고흐'展(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HJ컬쳐, 티모넷)

그의 삶은 고단했고 혼란스러웠으며 고독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들끓었고 쉴새없이 그림을 그렸고 사람들을, 세상을 만났다. 전세계 모두가 사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이야기는 극적이며 극단적인 감정들의 응축이다.

그를 폴 가셰 박사에게 소개한 인상주의의 대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는 “이 남자는 미치게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게 될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고흐의 삶은 폭풍 같았다. 카미유 피사로의 말은 어쩌면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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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사진제공=HJ컬쳐)

그는 미치광이 화가로 기억되고 있으며 죽고 나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아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삶이 뮤지컬, 영화, 전시로 2020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가선다. 

2014년 초연된 후 5주년을 맞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3월 1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1관)는 화가 빈센트(김대현·조형균·배두훈·이준혁, 이하 관람배우 ·시즌합류 ·가나다 순)와 그의 동생이자 화상(畵商)이었던 테오(박유덕·박정원·송유택·황민수)가 주고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풀어간 작품이다.   

가장 곤궁했고 상실감으로 피폐했던 상태에서도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던 빈센트와 마지막까지 가족으로, 후원자로 형 빈센트를 지원하고 다독였던 동생 테오의 이야기를 담은 2인극으로 독특한 음색의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넘버를 꾸렸다.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방’ ‘꽃핀 아몬드 나무’ ‘밤의 카페’ ‘카페테라스’ ‘자화상’ 등 고흐의 명작들이 3D영상 맵핑기술로 무대 위에 구현되며 테오 역의 배우가 테오를 비롯해 아버지, 폴 고갱, 사제 등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다. 

초연부터 테오였던 박유덕이 여전히 함께 하며 2015년 재연의 빈센트였던 조형균이 다시 돌아왔다. JTBC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 시즌2 우승팀 포레스텔라 멤버로 무대 활동이 뜸했던 배두훈의 복귀작이기도 한 ‘빈센트 반 고흐’에는 김대현·이준혁과 박정원·송유택·황민수가 빈센트와 테오로 새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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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그의 그림에 대한 철학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인간으로서의 가치관에 집중한다. 작품에 눈물 나게 궁핍했던 삶, 오롯이 동생 테오의 부담거리였던 형, 동료였던 폴 고갱에 집착하는 미치광이 화가, 세상에 거부당한 아웃사이더 등에 대한 구구절절한 표현은 없다. 

자칫 신파로 흐를 법한 요소들은 낡은 구두, 얼굴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게 마른 얼굴, 어지럽게 흔들리는 카메라, 흑백으로의 전환, 소리와 화면의 일체 등으로 대신한다. 고갱과 나눴던 화가 공동체 운영에 대한 대화에서의 깨달음이 가슴을 울리고 빛과 바람, 들판, 사람들, 해바리기 등의 자연에서 이어지는 고흐 작품들의 향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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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자신을 밀어내기만 하는 세상, 그에 대한 원망과 절망은 오롯이 그림을 그리는 열정으로 승화된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그의 고독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 음식이나 술, 과일을 건네주었으면 좋겠다”는 첫 내레이션과 “어쩌면 나는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몰라요”라는 독백과도 같은 대사에 함축돼 있다.

 

오해받고 거부당하며 한없이 쓸쓸했지만 단단했던 예술적 행보와 그 깊이가 느껴지는 윌렘 데포의 고흐, 오스카 아이삭의 고갱, 매즈 미켈슨의 사제, 루퍼트 프렌드의 테오 등이 살아 움직이며 그 여운을 더한다. 

제주에서 진행 중인 ‘빛의 벙커’에서는 지난해 12월 6일부터 ‘반 고흐’展(10월 25일까지)을 시작했다. 미디어 아트 전시로 고흐 삶의 각 단계와 뉘넨(Neunen), 아를(Arles), 파리(Paris), 생레미 드 프로방스(Saint Remy de Provence) 그리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등에서의 흔적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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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벙커: 반 고흐’ 展(사진제공=티모넷)

‘별이 빛나는 밤에’(La nuit etoilee), ‘씨 뿌리는 사람’(Le semeur),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해바라기’(Tournesols), 조카 빈센트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린 ‘꽃 피는 아몬드 나무’(Blossoming Almond Tree), 풍차를 주제로 한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 ‘밤의 카페 테라스’(Terrasse du cafe le soir), ‘노란집’(The Yellow House), ‘아를의 반 고흐의 방’(Bedroom at Arles), ‘까마귀가 나는 밀밭’(Champ de bles aux corbeaux), ‘자화상’까지 초기 작품부터 전성기, 말년까지를 아우른다.

32분 동안의 메인 전시에 이어 고흐와 가장 친밀하고 강렬하게 교류했던 폴 고갱의 작품도 함께 만날 수 있다. 폴 고갱의 작품은 고향 브르타뉴 회상을 시작으로 자화상까지 10여분의 짧은 필름 형태로 이어진다. 

10분 남짓의 폴 고갱(Paul Gauguin) 전에서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집’(The Fare), ‘타히티 정원’(Tahitian Pastorale), ‘춤추는 브르타뉴 소녀들’(Breton Girls Dancing), ‘바이루마티’(Vairumati) 등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교류했지만 결국 반목했던, 그렇지만 전세계 미술사에 강렬한 영향을 미친 두 화가의 작품들을 거닐 수 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