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수 앞 장문을 못 본다? … 이세돌, AI 한돌에 ‘어처구니’ 1승

김상우 기자
입력일 2019-12-18 17:31 수정일 2019-12-18 17:50 발행일 2019-12-1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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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로기사에서 은퇴한 이세돌은 18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NHN의 바둑 AI 한돌과의 치수고치기 3번기 1국에서 92수 만에 흑불계승을 거뒀다.(사진=NHN 제공)

이세돌과 인공지능(AI)의 빅매치로 큰 관심을 받은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치수고치기 3번기 제1국은 100수도 가지 못하는 단명국으로 끝이 났다.

AI 한돌은 바둑 유단자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장문을 착각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장문이란 상대편 돌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기술로 바둑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는 기술 중에 하나다.

최근 프로기사에서 은퇴한 이세돌은 18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NHN의 바둑 AI 한돌과의 치수고치기 3번기 1국에서 92수 만에 흑불계승을 거뒀다. 1국은 이세돌이 먼저 두 점을 깔고 두는 접바둑으로 진행됐다. AI의 높은 실력을 인정하고 두 점 치수로 조정한 것이다. 한돌은 덤 7집반을 받았다.

보통 접바둑에서 1점의 가치는 10집 이상으로 본다. 한돌에게 덤 7집반을 주더라도 이세돌이 10집 이상의 우위를 점한 채 대국에 들어간 것이다. 과거 일본 바둑을 풍미했던 고(故) 후지사와 슈코 9단은 만약 바둑의 신과 대결한다면 적정 치수를 4점으로 봤다.

이날 대국은 이세돌 9단의 타개와 한돌의 공격으로 전개됐다. 2점을 먼저 깔고 시작한 만큼 이세돌은 발 빠르게 실리를 벌어들이며 한돌의 공격을 유도했다.

승부처는 우변 접전이었다. 한돌이 흑 대마를 세차게 몰아치고 이세돌이 타개에 나서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한돌은 흑이 백돌의 빈틈을 추궁하며 역공을 가하는 상황에 장문을 보지 못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순식간에 판이 끝난 것이다.      

이날 국내 최대 인터넷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에서 해설을 맡은 한승주 6단은 “흑이 우세했지만 우변 접전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급작스레 바둑이 끝났다”며 “흑 82에 백 83으로 받아준 것이 패착으로 중앙 백 석 점이 제압당해선 백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 63 이후 흑이 인내하면서 천천히 살려나간 것이 승리의 요인이 된 것 같다”며 “장문을 못 본 것인지 축을 못 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형세가 불리해지면서 나온 버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승리로 이세돌은 AI에 두 번째 승리를 거뒀다. 지난 2016년 3월 구글의 AI 바둑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1승 4패를 기록해 AI를 상대로 유일하게 승리한 인간이 됐다. 3년 만에 다시 맞붙은 AI가 알파고는 아니지만 한돌 역시 높은 수준의 기력을 갖고 있던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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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이 바둑 AI 한돌과의 대국을 앞두고 ‘브레인마사지’ 프로그램이 적용된 바디프랜드 파라오SⅡ 안마의자에 앉아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사진=바디프랜드 제공)

한편 NHN은 지난 2017년 12월 AI 한돌을 선보였다. 올 1월 신민준· 이동훈·김지석·박정환·신진서 9단과 릴레이 대국인 ‘프로기사 톱5 VS 한돌 빅매치’ 이벤트에서 한돌은 전승을 기록할 만큼 정상급 실력을 뽐냈다. 올 8월에는 세계 AI 바둑대회인 ‘2019 중신증권배 세계 인공지능(AI) 바둑대회’에 출전해 3위에 올랐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한돌이 호선 바둑에 프로그래밍되면서 접바둑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래도 장문을 착각한 것은 한돌의 기력 수준이 중국의 ‘절예’(FineArt)나 ‘골락시’(GOLAXY), 알파고에게 100전 100승을 거둔 ‘알파고 제로’보다 낮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1국은 기대 이하의 내용이었지만 2국은 접바둑이 아니기 때문에 한돌이 제 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1국에서 승리한 이세돌은 19일 열리는 제2국에서 정선으로 대결한다. 정선은 덤을 주지 않고 두는 방식을 말한다. 만약 2국도 이기게 되면 3국은 호선으로 진행한다. 이세돌은 1국 승리로 기본 대국료 1억5000만원에 승리 수당 5000만원을 챙기며 현재까지 2억원의 상금을 확보한 상태다.

김상우 기자 ksw@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