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에도 졌던 메드베데프, 어느새 ‘테니스 빅 3’ 이을 차세대 챔프로

조성준 기자
입력일 2019-09-09 14:56 수정일 2019-09-09 15:38 발행일 2019-09-09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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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NIS-US-OPEN <YONHAP NO-1031> (AFP)
러시아의 다닐 메드베데프가 8일 폐막한 US오픈 테니스 대회 결승전에서 라파엘 나달에 아깝게 2-3으로 무릎을 꿇었지만 조코비치와 나달, 페더러를 잇는 차세대 챔프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연합뉴스.

‘러시아의 신예’ 다닐 메드베데프가 나달과 명승부를 펼치며 제대로 이름 값을 했다.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2위 나달(스페인), 3위 로저 페더러(스위스)가 이끄는 ‘3강 구도’를 깰 가장 확실한 차세대 챔프로 이름을 올렸다.

8일 폐막한 US오픈 테니스 대회 결승전에서 다닐 메드베데프는 자신이 왜 세계 5위인가를 증명했다. 비록 나달의 노련미에 아깝게 2-3(5-7 3-6 7-5 6-4 4-6)으로 무릎을 꿇기는 했지만, 5시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나달에 맞서는 모습이 차세대 챔피언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특히 먼저 두 세트를 내주고도 포기하지 않고 나달을 밀어 붙여 3, 4세트를 잇따라 따내는 괴력을 발휘해 팬 들의 아낌없는 환호를 받았다. 승자인 나달 역시 그를 극찬했다. 나달은 “오늘 경기는 크레이지 매치(미친 경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메드베데프는 그가 왜 세계 5위인지를 잘 보여 주었다”며 “앞으로 그에게는 더 많은 우승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그의 실력을 칭찬했다.

세계 랭킹 5위인 메드베데프는 올해 23세로 랭킹에 비해 매우 젊다. 특히나 이번 US오픈 결승전은 그에게 있어 첫 번째 메이저 대회 결승 진출 경기였다. 초반 상기된 표정으로 긴장감이 역력했으나 실력 만큼은 나달에 지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 1, 2세트를 아쉽게 내주면서 3-0 패배의 기운이 돌았으나 메드베데프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게임을 끌고가며 나달을 괴롭혔다.

마지막 5세트에서도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격전이었다. 다리 통증 탓에 제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 상태에서, 푸트 워크를 방해하는 나달의 네트 근처에 떨어지는 드롭 샷 등에 고전했다. 경기 도중에 평정심을 잃고 과격한 행동을 해 팬들의 야유를 사기도 했으나,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여러분들 덕분에 내가 더욱 에너지를 얻는다”며 시크한 면모를 보였다.

시상식 인터뷰에서는 특유의 끼를 발산하기도 했다. 나달의 우승을 기념해 그가 이제까지 18차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영상을 틀어주자, 메드베데프는 “내가 만약 우승했으면 뭘 보여줬을지 모르겠다”며 웃음을 주었다. 자신은 메이저 대회 결승 진출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소개하며 팬 들을 웃게 만들었다.

더욱이 그는 진행자가 ‘세트 스코어 0-2로 지고 있을 때는 어떤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20분 후에 3-0으로 지고 나면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했다”고 말해 팬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경기 중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자극적인 행동을 했던 선수라는 사실을 잊고 모든 팬들이 이 어린 러시아 선수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메드베데프는 신장이 198㎝로 거의 2m에 육박하는 선택받은 피지컬을 지녔다. 그럼에도 수비력이 탄탄하고 스트로크에 강하다. 랠리에 일가견이 있는 나달에 전혀 밀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20회가 넘는 긴 랠리를 이어갔다.

메드베데프는 한국의 에이스 정현과도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96년생으로 동갑인 정현에게 두 차례나 패했지만, 지금은 랭킹 170위인 정현 보다 세계 렝킹이 월등히 앞서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더니 2018년 10월 일본 투어 대회 우승에 이어 올해는 우승 1회, 준우승 3회의 호성적으로 세계 랭킹을 급격히 끌어 올렸다.

이날 준우승으로 그는 아직 나달의 수준에는 2% 부족하지만 언젠가, 그것도 매우 빠른 시기에 나달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차세대 챔프가 될 수 있음을 공인받았다. 메드베데프가 지금처럼 성장한다면 노박 조코비치-나달-로저 페더러의 ‘빅 3’가 나눠 갖고 있는 세계 테니스계에 곧 새로운 챔프가 등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강력한 스트로크와 끈질긴 수비력에 더해 서브의 파워와 정확성만 보완한다면 빅3를 넘어 새로운 테니스 역사를 쓸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조성준 기자 cho@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