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제보복] 한일 경제전쟁 가시화 … 해법은 없나

한장희 기자
입력일 2019-08-02 11:49 수정일 2019-08-02 11:49 발행일 2019-08-0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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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브리핑 화면 보는 시민들
일본 정부가 각의(국무회의)에서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대상인 백색국가 명단(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결정한 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브리핑 화면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 파트너 관계가 과거사 문제로 결국 파국을 맞고 있다.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위기에 봉착하면서 한일 경제전쟁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일본의 추가 경제보복이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이제 외교적 해법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극단의 선택이라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라 이번 파국을 헤쳐갈 현실적 대안이 보이지 않아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자칫 양국 안보 협력 체제에도 금이 가 동북아 평화 정착이라는 큰 그림도 상당 부분 훼손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 일본, 일부 한국 수출 금지 가능성도 배제 못해

일본의 일방적인 경제 보복 조치는 1965년 수교 이후 반세기 동안 쌓아온 양국 간 파트너십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다. 특히 이번 갈등을 낳은 시초가 되었던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관한 시각 차가 좁혀지지 않는 한 이번 사태가 쉽게 마무리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더 이상 과거사 문제로 한국에 발목 잡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자국 산업에 일정 부분 피해가 올 수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일본 정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이번 선택을 한국 정부나 한국 국민들이 ‘태도 변화’의 전환점으로 삼아 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으며, 따라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은 청구권협정 위반이며 따라서 한국 정부가 스스로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 정부는 특히 자국 기업이 더 이상 과거사로 인해 피해를 입어선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우리 정부가 ‘양국 기업의 기금을 모아 위자료를 지급하자’고 한 제안을 거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국과 일본 간 경제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주체는 기업이다. 일본이 자국 기업 피해 가능성 차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보복 조치가 예상되고 있는 터라, 기업과 산업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일본이 2일 우리나라를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한 만큼, 앞으로 한국으로 향하는 일본 물품에 대한 수출심사는 90일 정도로 길어지게 된다. 당장 재고가 넉넉치 않은 물품의 경우 큰 타격이 올 수 있다. 나아가 일본이 이런 상황을 교묘히 이용해 한국이 꼭 필요로 하는 물자에 대해 드러나지 않게 혹은 노골적으로 일부 수출 금지조치까지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우리 정부 대응방안은?

이번 사태는 문재인 대통령의 능력을 가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 역시 “한국 기업들에 실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수차례 언급해 왔던 만큼, 이번에 어떤 맞대응 전략을 펼칠 지 주목된다.

강경화-고노 '무슨 대화?'<YONHAP NO-0093>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저녁(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2019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갈라만찬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함께 참석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 “대안 없이 강공 일변도로 치닫다가 국민들만 힘들어지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만큼, 문 대통령으로서도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특히 일본의 이번 경제보복 조치가 우리 기업이나 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참에 부품산업을 비롯한 한국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반드시 찾아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일단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소집한 국무회의에서 일본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에서도 강력한 ‘맞불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정치적 목적의 보복을 상쇄할 만한 대웅 조치를 내놓을 지 주목된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을 제소한다는 기존 방침 외에 일본산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제하는 역 보복 조치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일부 일본 수입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등의 대응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반대는 있지만 2020년 도쿄올림픽 보이콧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연장 거부 카드는 가장 예상되는 카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최근 방콕에서 가진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렬 후 그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일본이 안보 상의 이유로 말도 안되는 수출 규제를 선택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과 일본은 한-중 무역전쟁 수준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한-일 경제전쟁이 불가피해 진다.

◇ 돌파구는 결국 외교 뿐?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정부에서 문제를 키운 만큼,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직접 만나 해ㅔ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외교부 장관 만남에서도 별 해법을 찾지 못한 상황인 만큼, 극단의 선택을 할 것이 아니라면 양국 수장의 독대 만이 유일한 돌파구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특사 파견 가능성도 언급된다. 9월 말에 열리는 유엔총회나 10월 말∼1월 초로 예정된 아세안+3 정상회담, 11월 중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등에서 두 정상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만큼, 그 이전에 특사를 보내 해법을 사전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일왕이 한국에 대해 부전적이지 않다는 점을 들어, 10월 22일 일왕 즉위식 때 기회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양국에 모두 혈맹인 미국을 중재인으로 한 조율 가능성도 대안으로 대두된다. 현재까지는 미국이 “양국 문제는 양국이 알아서 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일 양국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 지고 특히 지소미아 같은 군사적 이슈로 까지 사태가 확대될 경우 미국으로서도 좋은 일이 아니기에 결정적 순간에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가 시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사태의 출발점이 대법원 판결 이었던 만큼, 이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의 시각 차를 좁히는 묘책이 나오지 않는 한 양국 경제전쟁의 큰 흐름을 막기는 역부족일 것이란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김수환·박종준·한장희 기자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