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본 수출규제 글로벌 여론 전 우위 판단…WTO 제소 준비 본격화

이원배 기자
입력일 2019-07-28 16:20 수정일 2019-07-28 17:16 발행일 2019-07-2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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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해법 모색도…ARF 한·일 장관 회담 성사 주목
김승호 실장, WTO 일반이사회 참석 결과 브리핑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우리 정부의 수석대표로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지난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출장 결과에 대해 언론에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연합)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WTO 제소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의 대(對) 한국 소재·부품 수출 규제와 관련해 지난 주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와 미국 정·재계 홍보를 통한 국제 여론전에서 일단 우위에 섰다고 판단한 것이다.

28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지난 26일 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하고 돌아와 “WTO 회원국의 비공식 지지 의사를 받았다”며 “한국이 편한 날짜에 WTO 제소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WTO 제소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일본의 수세적 입장을 이끌어내 여론전에서 우위에 섰다는 판단에서다. 산업부는 “일본 조치의 문제점을 전파하는 동시에 일본의 비협조적인 태도도 부각시켰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수출규제에 이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까지 이어질 경우 일본의 WTO 협정 위반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도 뒷받침된다.

이에 산업부는 이번 WTO 제소 과정에서 일본의 수출규제가 ‘자유무역’을 명시한 WTO 규범에 위배된다는 점을 적극 강조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세계 경제에 더욱 심각한 위협과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킬 계획이다.

WTO 제소 절차는 제소장 성격의 ‘양자협의 요청서’(request for consultation)를 일본 측에 제출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에 정부는 우선 협의 요청서 작성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WTO 제소 및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통상 1~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단·중기 ‘양면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WTO 제소라는 중장기적 프로세스로 일본을 계속 압박하고 우호적인 글로벌 여론을 규합하는 한편으로 일본과의 직접적인 타결 노력이 현 시점에선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외교적인 해법 모색에도 나선다. 다음달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 한·일 외교 장관이 나란히 참석할 예정이다. ARF에서 강경화 외무부 장관과 고노 타로 일본 외무상이 만나 양국간 갈등의 해법을 논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앞서 지난 26일 강 장관과 고노 타로 외무상은 전화 통화를 갖고 외교채널을 통한 대화와 소통의 지속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통화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의 철회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취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ARF에서 한·일 외교 장관이 회담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어 26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정저우에서 진행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27차 협상에서도 일본 수출규제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백색국가 제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하고 있다. 산업부는 오는 29일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국내 20개 업종의 관련 기업을 순회하며 화이트 리스트 제외시 준비 상황과 관련해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산업부는 일본 제도 변경에 대한 주요 내용과 기업이 준비해야 할 사항, 피해 발생에 따른 지원 등을 설명할 계획이다.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더라도 일본 경제산업성이 포괄허가 혜택을 주는 자율준수프로그램 인정기업(CP)을 거래대상으로 활용하면 상대적으로 수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알리기로 했다.

박종준·이원배 기자 jjp@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