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이상화, 눈물의 은퇴 “포기 않는 의지가 날 최고로 만들었다 …최고의 모습으로 기억해달라”

김민준 기자
입력일 2019-05-16 17:21 수정일 2019-05-16 17:36 발행일 2019-05-16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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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속 여제'의 눈물<YONHAP NO-4683>
‘빙속 여제’ 이상화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식 및 기자회견에서 선수 생활의 소회를 밝히던 중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최고의 여자 단거리 스프린터로 ‘빙속 여제’라 불리던 이상화가 16일 서울시 더플라자 호텔에서 눈물의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상화는 이날 “팬들이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줄 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은퇴를 결심했다”며 은퇴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평창동계올림픽 후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 했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몸 상태가 돌아오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상화는 최종적으로 은퇴 결심을 한 시기를 묻는 질문에 “사실 3월 말에 은퇴식을 잡았다가 취소했다. 막상 은퇴식을 하려니까 너무 아쉽고 미련이 남았다. ‘조금 더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재활 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지금 위치에서 마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소치 올림픽을 들었다. 올림픽 2연패와 함께 ‘완벽한 레이스’를 펼쳤다고 자평했다. 그는 “스피드스케이팅계에서는 세계신기록을 세운 선수가 그 다음 올림픽에선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둔다는 징크스가 있었다”며 “두려웠지만 난 이겨냈다”며 대견스러워 했다.

'이상화 못 보내'<YONHAP NO-4636>
16일 오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이상화 선수 은퇴식 및 기자회견에 참석한 팬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세 번의 올림픽에서 3개의 메달(금 2, 은1)을 따냈지만 평창이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밴쿠버 올림픽 메달은 내 첫 올림픽 메달이었고, 소치 메달은 징크스를 이겨낸 메달이었다”고 밝힌 이상화는 “평창 때는 부상 때문에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한국에서 개최되어 더 긴장됐다 면서도 “이런 것들을 이겨내고 메달을 땄다”며 웃었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는 “(평창올림픽 때도) 살아있는 전설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지금도 그 바람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특히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선수, 항상 열심히 했던 선수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평창 금메달리스트이자 필생의 라이벌인 고다이라 나오(일본)와의 은퇴 관련 뒷 얘기도 공개했다. 그는 “지난 주 금요일 은퇴기사가 나간 뒤 나오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는데 ‘농담 아니냐’고 깜짝 놀라다고 하더라. 나오는 ‘잘못된 기사였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조만간 나오가 있는 일본 나가노로 가 그녀를 만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상화는 “나오와는 인연이 깊다. 중학교 때부터 우정을 쌓았다”면서 “나오는 아직 현역인데,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하던 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부모님은 이상화의 은퇴에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화 역시 “부모님은 계속 운동하길 원하셨다. 최근까지 은퇴식을 연다는 것도 말씀드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오늘 아침에 ‘잘 하고 오라’고 하셨는데, 서운함이 묻어있는 것 같더라”며 “달래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은퇴 후 계획에 대해 그는 “올해 은퇴 결심을 해 향후 계획을 짜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아직은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상태”라고 말하면서도 “앞으로 지도자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여운을 남겼다. 베이징 올림픽 때 해설위원이나 코치로 참가하고 싶다는 말로 자신의 향후 거취를 시사했다.

꽃다발 받은 ‘빙속 여제’ 이상화<YONHAP NO-4655>
이상화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식 및 기자회견에서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화의 500m 기록은 아직도 세계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상화는 웃으며 “영원히 안 깨졌으면 좋겠다”면서도 “다른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올라와 이제 36초대 진입이 쉬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 1년 정도만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세계 최고의 빙상 레전드가 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들었다. 이상화는 “‘저 선수도 하는데 왜 난 못하지’라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했다”며 “이런 생각이 안 되는 것을 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이 ‘마인드 컨트롤’이었다고 토로했다. 늘 1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식단 조절은 물론 남들이 하나를 할 때 나는 둘을 해야 했다”며 “당시엔 힘들었지만, 이런 과정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로 의정부시청 소속의 김민선 선수 이름을 올렸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강한 선수”라며 “내 어렸을 때 모습과 비슷하다”고도 말했다. 두 사람은 평창올림픽 때 같은 방을 썼다. 당시 김민선은 오히려 이상화에게 떨지 말고 잘 하라고 조언할 정도로 좋은 인성을 가진 후배라고 소개했다.

이상화는 휘경여중 때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된 후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금메달,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사상 최초의 3연속 올림픽 빙상 금메달에 도전했으나 나오에게 근소한 차로 밀려 은메달에 그친 바 있다. 2013년에 세운 그의 여자 500m 기록, 36초36은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김민준 기자 sports@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