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발레가 다시 찾아왔을 때를 위한 웅크림, ‘그랑제떼’처럼!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05-02 22:00 수정일 2019-05-02 23:37 발행일 2019-05-0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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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최종훈(HUN)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서울예술단의 2019년 첫 신작
서재형 연출·박해림 작가·김효림 작곡가·이경화 음악감독·유회웅 안무가, 진선규·최정수, 강상준·이찬동, 금승훈, 김용한 등 출연
그랑제떼처럼 더 멀리 날기 위한 웅크림, 꿈 꾸는 이들을 위한 힐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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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이채록 역의 강상준(왼쪽)과 심덕출 진선규(사진제공=서울예술단)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이 발레를 시작한다는 건 굉장히 드라마틱한 요소였어요. 그걸 무대 위로 어떻게 가져올까, 발레란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창작가무극 ‘나빌레라’(1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프레스콜에서 박해림 작가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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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심덕출 역의 최정수(사진제공=서울예술단)

“기억을 잃어가는데 몸의 뼈와 근육을 바로 세우는 발레를 시작하는 게 굉장한 메타포(은유 혹은 암유)처럼 느껴졌어요. 발레는 기본동작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입니다. 땅에서 바로 서는 것과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을 향하는 것이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덕출이 하고자 하는 얘기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인물들 상황과 연결하고 싶었죠.”

‘나빌레라’는 최종훈(HUN)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서울예술단의 2019년 첫 신작이다.

70세 생일을 앞둔 치매노인 심덕출(진선규·최정수, 이하 가나다 순)과 발레리노의 꿈이 좌절될 위기에서 처한 스물셋 이채록(강상준·이찬동)이 문경국(금승훈) 발레단에서 만나 교류하면서 펼쳐지는 성장극이다.

‘오이디푸스’ ‘리차드3세’ 등의 서재형 연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금란방’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전설의 리틀 농구단’ ‘모래시계’ 등의 박해림 작가, ‘HOPE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의 김효림 작곡가, ‘윤동주, 달을 쏘다’ ‘덕혜옹주’ ‘외솔’ 등의 이경화 음악감독, 국립발레단 출신의 유회웅 안무가 등이 의기투합했다. ◇발레가 다시 찾아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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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심덕출 역의 최정수(왼쪽)와 이채록 이찬동(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의지하지 않고 혼자 바로서기!” “조금씩 진심을 다해 기본동작이 가능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프레스콜에서는 ‘발레의 시작’ ‘매일이 새롭다’(이상 최정수·이찬동), ‘아름다움이란’ ‘매일 매일이 아깝다’ ‘그건 꿈이라서 그런 것 리프라이즈’ ‘이쇼라스’ ‘오늘 밤 눈이 내리면’(이상 진선규·강상준·김용한·금승훈) 등 하이라이트 시연됐다.

‘나빌레라’는 “저는 발레가 좋습니다”라며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좀 더 해보고 싶고 할 수 있어요. 좀더 살아 있다고 느끼고 싶어요”라고 노래하는 덕출을 통해 ‘발레’를 삶에 빗댄다.

그렇게 꿈을 상징하는 “발레가 다시 찾아왔을 때”를 상상하고 생각하게 하는 ‘나빌레라’에 대해 서재형 연출은 “발레는 접하기 어려운 예술”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발레가 생활 안에서 춤추는 것이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곤 발레를 사랑하는 모임을 찾은 덕출과 채록의 모습을 담은 ‘아름다움이란’ ‘매일매일이 아깝다’ 장면을 예로 들었다.

시립무용단원 출신의 과일가게 주인, 목발을 짚은 여자가 선사하는 발레는 기술적으로는 허술하지만 그 속에 깃든 마음만은 진짜임을 보여주는 이 넘버에 대해 서재형 연출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장면”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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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심덕출 역의 진선규(왼쪽)와 이채록 강상준(사진제공=서울예술단)

“전형적인 동작이 아니어도 삶 속에 깃든 몸짓, 그게 ‘발레’라고 하는 게 이 작품과 맞는 것 같아요. 어렵게가 아닌 삶 속에서 접하는 것, 그게 원래 발레가 가진 의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 서재형 연출은 “이 작품과 연관성이 없더라도 저의 작은 소신은 발레 뿐 아니라 연극, 클래식, 뮤지컬이 너무 멀리 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우리가 하는 예술이 일상에 스며들어 모두가 향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박해림 작가가 예쁘게 표현해줬다”고 덧붙였다.

“발레는 전부 어려웠다.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는 진선규의 토로에 윤회웅 안무가는 “삶 속의 발레는 너무 좋지만 (무용수이자 안무가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힘들었다”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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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이채록 역의 강상준(왼쪽)과 심덕출 진선규(사진제공=서울예술단)

“한국무용 베이스의 서울예술단원들과 호흡이 달라서 재밌는 일이 많았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덕출이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과 발레 기본에서 비롯한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데 충실했어요.”

◇더 멀리 날기 위한 웅크림…그랑제떼처럼!

“작품이 가진 따뜻한 정서를 해칠까 걱정이었어요. 예쁜 장면장면에 맞춰 곡을 쓰다 보니 서정적인 곡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넘버들에 대한 김효은 작곡가의 설명에 이경화 음악감독은 “작곡가님이 서울예술단으로부터 대중적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의뢰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발레는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뮤지컬에 맞게 대중적으로 편곡했다”고 부연했다.

“그래서 밴드 사운드에 스트링을 입히자 했어요. 클래식은 스트링으로, 편한 건 드럼, 기타가 친숙하게 표현했죠. 덕출이 점프할 때 ‘그랑제떼’(Grand jete)라고 하는 음정들을 요소요소에 심어서 음악을 업그레이드했죠.”

‘그랑제떼’는 공중으로 뛰어 다리를 일자로 유지했다 착지하는 발레 동작으로 ‘나빌레라’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덕출은 물론 채록과 축구선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는 강성설(김용한)이 현재를 “더 멀리 날기·더 멀리 차기 위한 웅크림”이라고 되뇌는 ‘그건 꿈이라서 그런 것 리프라이즈’에서도 등장한다. 그렇게 ‘나빌레라’는 모두에게 있었고, 현재 좇고 있는가 하면 앞으로 이뤄 나갈 ‘발레’, 그 발레가 다시 찾아왔을 때를 위한 ‘그랑제떼’를 각인시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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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나빌레라’(사진제공=서울예술단)

“평범한 소시민에 초점 맞춘 꿈 이야기”라는 권호성 예술감독의 소개에 유희성 서울예술단 이사장은 “첫 공연(1일)을 보면서 출연진이나 스태프, 관객분들이 다 같이 좋은 감정을 교류하는 걸 느꼈다”고 말을 보탰다.

“일회성으로 끝나면 안되는 공연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레퍼토리로 롱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제 시작입니다. ‘나빌레라’가 한국은 물론 동남아, 전세계에서 공연되는 그날까지 좋은 작품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