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상장1호’ 웹케시 윤완수 대표 “금융과 인터넷의 결합은 신세계”

노연경 기자
입력일 2019-02-24 17:03 수정일 2019-02-24 17:04 발행일 2019-02-25 9면
인쇄아이콘
외환위기 은행 해직자가 만든 금융·IT의 결합체
편의점 빈공간에 ATM기·기업 인터넷 뱅킹 안착
밤새는 경리직원 위한 소프트웨어 ‘경리나라’도
“운이 좋아 여기까지…금융혈맥 잇는 회사될 것”
0C5Z5089
(사진제공=웹케시 윤완수 대표)

1997년 외환위기 칼바람은 매서웠다. 평생직장으로 여겨졌던 은행에서도 대량해고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1999년 동남은행 전산팀에서 근무 중이던 웹케시의 윤완수 대표도 감원 대상자 중 하나였다.

상상도 못했던 위기였으나, 그는 위기를 기회로 잡았다. 함께 직장을 떠난 동남은행 전산팀 동료들과 부산에 사무실을 얻었고, 간이침대를 들여놓고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는 날들을 견뎌냈다. 그 결과 웹케시는 B2B(기업간거래) 핀테크 업체 최초의 상장기업이 됐다.

이런 윤 대표를 최근 서울 영등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시대와 기회가 따라줬기에 운좋게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윤 대표는 “1999년은 금융과 인터넷이 막 접목되던 시점이었는데 금융전문가이면서 IT전문가인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게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 대표의 행운 뒤에는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보수적 기업문화를 가진 은행의 신뢰를 얻고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그와 직원들은 밤낮 없이 일했다.

그런데도 계속된 시행착오로 2000년대 중반까지 직원들의 월급을 주느라 대출을 받기까지 했다. 윤 대표는 “희망과 꿈이 있었으니 버텨낸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동기가 확실하게 부여되는 것 중 하나가 미래를 개척한다는 느낌이 들 때”라며 인내의 비결을 설명했다.

은행의 신뢰를 얻기 시작한 웹케시는 금융의 방식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윤 대표는 “기존의 금융망은 폐쇄적이었다”면서 “은행 창구에 있는 직원만 단말기를 통해 이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인터넷은 주소만 알면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폐쇄적이었던 금융망과 성격이 많이 달랐다”며 “금융에 인터넷이 결합되면서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다름없다”고 비유했다.

그때부터 윤 대표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웹케시는 좀 더 편한 금융을 꿈꾸는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는 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기술적 한계를 사라지게 한 것이다.

편의점 빈 공간을 활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는 ATM기를 들여놓게 했다. 또 기업도 인터넷뱅킹을 할 수 있게 했다. 최근에는 영수증을 오리고 붙이느라 밤새워야 하는 경리직원들을 위해 경리소프트웨어 ‘경리나라’를 개발했다.

윤 대표는 여전히 미래의 금융산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는 그동안 이면에서 거래됐던 금융이 실물거래와 융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면거래와 실물거래 콜라보레이션이의 대표적인 게 카카오택시다.

이전에는 택시를 타는 것과 지불하는 행위 모두 실제행위와 실물거래로 이뤄졌다면, 이제 카카오에 연동돼 있는 계좌에서 자동으로 택시비가 이체되는 실물행위와 이면거래가 함께 이뤄지는 것이다.

윤 대표는 이곳에 미래가 있다고 봤다. 그는 “사람들은 좀 더 편안하고 쉬운 것을 원한다. 기본적 욕구”라며 “이를 충족시켜야 비즈니스의 가치가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웹케시의 철학에 대해 그는 “물을 공급하기 위해 관을 깔듯 금융의 혈관을 까는 회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분야의 수도관사업자가 되겠다는 말이다.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웹케시는 제3의인터넷은행 제안도 거절했다.

윤 대표는 “몇 곳에서 함께 인터넷은행에 도전해보자고 제안이 왔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직접 금융업을 하는 일은 앞으로도 쭉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은행 등 금융기관과 경쟁하지 않는다. 그들이 금융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관을 깔아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연경 기자 dusrud1199@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