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국민연금發 상장사 사내유보금 논란

박종준 기자
입력일 2019-02-12 15:39 수정일 2019-02-12 15:53 발행일 2019-02-12 4면
인쇄아이콘
2018102801002111000099061
국민연금은 오는 14일 현대백화점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그린푸드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오는 3월 ‘주총 시즌’을 앞두고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원칙)’를 명분으로 일부 저배당 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이 비교적 낮음) 기업들을 타깃으로 주주제안이라는 ‘칼’을 빼 들면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국민연금은 오는 14일 현대백화점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그린푸드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배당을 높이라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지난 2015년 6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국민연금기금 국내주식 배당관련 추진방안’에 따라 남양유업, 한진칼, 현대그린푸드 등 저배당 성향 기업들을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데 따른 것이다.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회사 곳간에 쌓아두지 말고, 내수 진작 등 경기활성화를 위해 투자와 배당에 내놓으라는 압박이다.

국민연금과 별개로 정부는 최근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투자를 늘려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곳간에 쌓아둔 사내보유금을 시설투자나 고용 창출에 쓰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사내유보금과 투자와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앞서 과거 박근혜 정부는 기업들이 번 돈을 투자와 배당으로 유도하기 위해 순익을 일정량 사내유보금으로 쌓아 두면 이에 대해 세금을 물려 ‘기업소득환류세제’를 시행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투자와 배당, 임금 등을 늘리는 효과를 기대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작년 3분기까지 국내 상장사 2092곳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전년동기 대비 6.1% 늘어난 237조2367억원으로 집계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소득환류세제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특히 기업들은 사내유보금과 배당과 투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재계 안팎에선 국민연금의 주주제안 방식에 따른 고배당 유도 정책과 기업환류세를 통한 사내유보금의 실물경제 유입 및 내수활성화 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의 주주제안을 통한 방식은 기업들로 하여금 경영압박으로 인식할 수 있어 반감이 크고 △국내 주요 대기업 중 현대자동차와 LG전자 등을 제외하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많은 기업의 외국인 지분 비중이 50%를 넘는다는 점 △(기업환류세를 적용할 경우) 토해 내야 할 세금이 얼마 되지 않아 기업소득이 가계로 유입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기업들의 ‘영업활동현금흐름’ 대비 ‘현금증가분’ 비율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또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까지 지난 5년간 삼성전자·현대차·SK·LG 등 한국의 100대 기업의 ‘영업현금흐름 대비 유형자산 투자액’의 5년 간 평균값도 한국이 59.18%로, 일본·미국·중국 등 4개국 중 가장 높았다. 영업현금흐름은 한 해 영업활동의 결과로 기업에 유입된 현금을 의미하며, 현금증가분은 영업활동에 투자·재무활동까지 더해 최종적으로 손에 쥐게 된 현금을 뜻한다.

때문에 기업들 사이에선 국민연금의 배당확대 주문을 일축한 남양유업 논리를 대로 “사내유보금이 없으면 외부에서 차입을 통해 자금을 빌려와야 하는 만큼 재무건전성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최근 반도체 등 주력 업종 전망도 어두워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내수활성화를 위해선 규제 완화 등 투자 환경 조성이 먼저”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박종준 기자 jjp@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