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TV, 스크린, 무대 위 '바람' 열풍…불륜으로 사랑 찾는 아이러니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8-04-09 07:00 수정일 2018-04-09 07:53 발행일 2018-04-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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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공연 등 작품 속 불륜 넘쳐
최근 주목받는 미투 운동은 불륜에 대한 거부감 더 커지게 해
"막장 같은 재미 보장하지만, 불륜 미화는 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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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나의 아저씨’ (사진 제공=CJ E&M)
불륜 없이는 이야기를 풀어갈 수 없는 걸까. TV 드라마의 소재는 온통 불륜이다. SBS ‘키스 먼저 할까요’의 두 주인공 손무한(감우성)·안순진(김선아)은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했고 MBC 일일극 ‘전생에 웬수들’은 아버지의 불륜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던 최고야(최윤영)가 아버지 외도 상대의 조카 민지석(구원)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까지 이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거엔 주로 남자가 바람을 피웠다면 이젠 여자도 새로운 사랑 찾기에 적극적이다. 지난달 21일 방영을 시작한 tvN 수목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그 예다. 극 중 동훈(이선균)의 아내 윤희(이지아)는 남편의 대학후배이자 직장 상사 준영(김영민)과 불륜을 저지른다. 해당 장면은 드라마 1회부터 노출돼 시청자를 당황스럽게 했다. 불륜이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당초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아저씨와 스물네살의 나이 차가 나는 어린 여자의 사랑은 사소한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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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사진 제공=MBC)

시청자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사회 전반적으로 미투 운동(#Me too 나도 당했다)이 활발한 가운데 ‘불륜’이라는 소재는 더욱 민감하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결혼 5년차 직장인 임지윤씨는 ‘나의 아저씨’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드라마 속에서 불륜만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마치 드라마가 불륜이 진정한 사랑인 듯 권하는 인상을 받았다”며 “뉴스를 틀면 나오는 불륜, 성폭력 등 미투 관련 소식 때문에 드라마가 더 불편하게 다가온다”고 쓴소리를 했다.

‘나의 아저씨’와 같은 날 방영한 MBC 수목 드라마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이하 손 꼭 잡고)는 1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한 부부에게 닥친 죽음과 첫사랑이 희망과 사랑으로 도달한다는 기획 의도를 내세웠다. 

하지만 내용은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현주(한혜진)는 자신의 주치의 장석준(김태훈)과 서로 호감을 느낀다. 남편 김도영(윤상현)은 지나간 첫사랑 신다혜(유인영)에게 다시 끌린다. 불륜, 시한부는 출생의 비밀과 함께 막장 드라마에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손 꼭 잡고’에는 이 중 두 가지가 있다. 이는 한 부부가 죽음의 위기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돌아본다는 드라마 기획 의도가 공감을 살 수 없는 이유다.

작품 속 불륜은 공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월부터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닥터지바고’(5월 7일까지 샤롯데씨어터)는 러시아의 혼란한 역사 속에서 피어나는 유리 지바고(박은태·류정한, 이하 가나다 순)와 라라(전미도·조정은)의 숙명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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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유리 지바고 류정한과 라라 전미도(사진제공=오디컴퍼니)

195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동명소설을 무대에 올린 작품은 두 사람 모두 배우자가 있는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러시아 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표현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 이데올로기의 격돌 등 러시아 소설 특유의 상징성을 배제하고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에 집중하면서 ‘불륜’이라는 소재가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2월 25일 막을 내린 뮤지컬 ‘안나 카레리나’도, 6월 12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할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등도 운명을 거스르는 눈물겹고 처절한 사랑, 그 사랑이 겪는 역경의 도구로 ‘불륜’을 활용하고 있다.

◇바람이라 부르면 다른가? 잘못된 일탈과 코믹이 주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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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 바람 바람’ (사진 제공=NEW)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은 대놓고 불륜을 이야기한다. 관객의 비난이 두려워서 일까. 영화는 제목에 ‘불륜’ 대신 ‘바람’ 넣어 관객에게 좀 더 가볍게 다가가려 애를 썼다.

영화에는 묘한 매력으로 여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전설의 바람 석근(이성민)을 중심으로 매제 봉수(신하균)가 불륜에 빠지는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둘 사이에 섹시한 여인 제니(이엘)가 있다. 세 사람이 한 공간에 모이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원작은 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이다. 성인 남녀의 코믹한 일탈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매력적이지만 그 부분이 국내 정서에 어울릴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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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바람바람’, ‘희망에 빠지 남자들’ (사진 제공=NEW, 콘텐츠판다)
영화를 연출한 이병헌 감독은 “불륜이라는 것은 법적인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가장 큰 죄악이다. 이런 소재를 미화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신중하게 설명했다. 배우들도 작품이 주는 재미에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불륜 영화로 묘사되는 것에는 조심스러웠다. 인터뷰 자리에서 이엘은 “불륜 말고 바람이라고 표현해 달라”며 신중한 단어 선택을 부탁했다.

영화는 별다른 노출은 없지만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관객을 만나게 됐다. 불륜이 자칫 어린 관객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그동안 드라마처럼 영화에서도 불륜을 매개체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작품은 있었다. 하지만 ‘바람 바람 바람’처럼 주요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병헌 감독 특유의 대사와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불륜이 미화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