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주의를 안보논리에 적용한 美관세명령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18-03-12 12:05 수정일 2018-03-12 14:17 발행일 2018-03-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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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무역확장법 232조’ 안보침해 잣대로 관세 부과
韓정부, 동맹 강조·안보라인 통해 설득…관점 전환 필요
WSJ “철강 관세, 진짜 목적은 안보가 아닌 보호무역”
美 국가안보 정의…사실상 모든 제품에 관세부과 정당화
Trum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공화당 후보 선거지원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

미국이 철강 관세 부과를 결정한 이유로 ‘국가안보’를 꼽았다고 해서 우리 정부는 동맹관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면제 협상을 진행해왔다.

한국산 철강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항변하거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내 안보라인을 통해 관세 면제를 요구하는 방식 등이다.

그러나 ‘관세 명령’을 바라보는 정부의 관점에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당초 보호무역주의를 안보논리에 끌어다 놓은 관세 조치이기 때문이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경제평론가 그레그 입은 만일 국가안보가 문제였다면 이번 관세명령은 결함이 있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0% 관세를 부과한 알루미늄은 원광인 보크사이트에서 추출하는데, 미국은 보크사이트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크사이트를 미국에서 채굴하는 것은 채산성이 맞이 않아 미국 내 마지막 보크사이트 광산은 약 30년 전에 폐쇄됐다고 한다.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대형 알루미늄 제련소 시설들 역시 해외로 이전시켜왔다.

외국정부가 이러한 시설들을 점유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는 셈이다. 지난 2014년 인도네시아는 자국의 제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보크사이트 수출을 금지한 일도 있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안보 침해라는 잣대로 수입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무역제재를 가한 것은, 수입 제품 때문에 타격을 입은 미국 내 일자리와 관련 산업을 보호하려는 정치적인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보크사이트 생산에서 채산성을 맞추려면 수입관세를 상당히 무겁게 적용할 필요가 있는데, 이 경우 미국 알루미늄 제조기업의 경쟁력은 크게 약화된다. 이것은 그동안 누구도 관세를 요구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 철강과 알루미늄을 소비하는 기업들은 트럼프의 관세폭탄이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과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지금까진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미 상무부는 거의 모든 제품에 대해 관세부과를 정당화 할 수 있을 만큼 국가안보를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미국 경제를 약화시키는 모든 것들은 곧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이고, 식품에서부터 농산물, 헬스케어에 이르기까지 16개 섹터를 보호받아야 할 분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현시대에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데에는 전 세계로부터 수입된 재료들이 포함되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자급자족이란 불가능한 상황이다.

철강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 타이어제조협회에 따르면 군용차량을 포함하는 차량용 타이어에는 일정 수준의 철강 선재가 필요하지만 국내 생산업체는 군용 및 민간용에 필요한 양과 퀼리티를 공급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국 타이어제조협회는 관세면제를 요청했으며, 만일 이것이 인정된다면 상무부의 ‘국가안보’에 대한 정의에는 구멍이 많다는 것을 더욱 드러낼 것이라고 그레그 입은 설명했다.

김수환 기자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