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국 위협하고 한국을 친 트럼프판 성동격서(聲東擊西)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18-01-24 11:04 수정일 2018-01-24 11:05 발행일 2018-01-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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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국제부 기자

중국을 압박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삼성·LG 세탁기를 제물로 삼았다.

세이프가드 조치 발동 직전 트럼프 집무실 책상 위에는 무역관련 결정을 기다리는 서류들이 쌓여있었고, 대부분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잇단 경고에도 별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해 중국의 보복이 시작되면 미국도 막대한 손실을 입을텐데 ‘설마’ 감수하겠느냐는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이에 트럼프가 택한 전술은 성동격서(聲東擊西)였다. “땡큐 삼성” 트윗 한 줄에 미국에 공장까지 세웠던 삼성을 때려 세탁기에 관세 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삼성과 LG에는 미국에 공장과 일자리를 늘리도록 직접 압박하고, 중국에는 경고신호를 보낸 것이다.

중국도 자국산 태양광패널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지만, 아직은 장난감 총에 맞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미 다음차례로 철강, 알루미늄 수입품을 비롯해 미 행정부의 무역조치가 150개 이상 대기 중이다. 중국 지재권 위반 조사 결과를 고려한 중대조치도 예고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보복으로 미국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트럼프가 고려한다면, 그 불똥은 한국으로 튈 가능성이 높다. 임기 내내 미국의 경쟁업계가 컴플레인한 수입품목에 관세 폭탄을 던지는 수순이 예상된다. 최저 지지율의 트럼프는 “땡큐 트럼프”에 목이 마를 것이다. WTO 제소도 소요 시간을 감안할 때 근본 해결책은 안될 것이다.

18년 전 아무도 삼성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던 때에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제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대미의존도 높은 수출중심의 산업구조를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김수환 국제부 기자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