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우리가 히틀러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

박민지 기자
입력일 2017-10-22 07:00 수정일 2017-10-22 07:00 발행일 2017-10-19 99면
인쇄아이콘
히틀러1
<p>&nbsp;
히틀러1
<p>&nbsp;
히틀러1
<p>&nbsp;
히틀러1
<p>&nbsp;
히틀러1
<p>&nbsp;
히틀러1
<p>&nbsp;
히틀러1
<p>&nbsp;
히틀러1
<p>&nbsp;
히틀러1
<p>&nbsp;
히틀러1
<p>&nbsp;
히틀러1
<p>&nbsp;
히틀러1

나치 스파이였다.

나치 정당 지도자가 되기 전 나치 스파이로 활동했다. 독일 노동당 계획을 밝혀낼 정보원이었는데 노동당이 나치 정당이 되었다.

첫사랑은 유대인 소녀였다.

그의 첫사랑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첫사랑의 아픔으로 자살시도를 한 적 있다는 루머도 있다.

동물애호가다.

동물학대에 혐오감을 보인 채식주의자다. 전쟁이 끝난 뒤 독일이 야생 동물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고기 소비량을 줄이고자 했다. 의학실험 대상을 동물에서 유대인으로 바꾸었다.

노숙자 쉼터에서 머물렀다.

독재자가 되기 전 가난한 예술가였다. 한동안 비엔나 노숙자 쉼터에서 머물렀다.

고환이 하나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학생들이 히틀러와 수족을 조롱하면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7년간 국적이 없었다.

합스부르크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을 좋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신분을 포기했다. 1932년 2월 다시 시민권을 취득할 때까지 7년 동안 무국적 신분으로 지냈다.

신부를 꿈꾸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신부가 되고 싶었다고 전해진다. 8살 무렵에는 교회 성가대 일원으로 노래교육을 받기도 했다.

유대인 멸종박물관을 지으려했다.

모든 유대인은 죽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억하고 싶어 했다. 유대인 멸종박물관을 설립하기 위해 20여 만점에 이르는 유대인 유물 수집을 명령했다.

1939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적 있다.

1939년 7월 스웨덴의 한 국회의원이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두 달 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했다.

현대사 최초로 대중적 금연캠페인을 펼쳤다.

금주, 금연, 금욕을 강조했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마약중독자가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했다.

찰리 채플린이 그를 풍자한 ‘위대한 독재자’를 몰래 여러 번 봤다고 전해진다.

박민지 기자 pmj@viva100.com

카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