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휘둘리는 한국… 진의 파악 못하고 근거 없는 낙관론만

라영철 기자
입력일 2017-05-01 15:10 수정일 2017-05-01 17:53 발행일 2017-05-0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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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100-100PhotosYONHAPNO-2301(AP)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 10억불 요구' 발언과 관련한 미국측의 입장을 놓고 한국이 혼란에 휩싸였다. 펜스 미 부통령은 30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에 더 많은 역할을 지속 요구 할 것"이라고 밝혀 결국 한국측이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실었다. 사진은 올초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받은 편지 봉투를 공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의 모습. (AP=연합)

한국 정부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진의를 번번히 오판해 어려움을 자초하고 있다. 미국 측 발언을 우리에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는 바람에 오락가락하다 결국 막대한 분담금을 떠안아야 할 처지가 될까 우려된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9일 밤(현지시간)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 보좌관과 핫라인 통화로 ‘사드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음날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폭탄 발언’을 했고, 통화 당사자인 맥매스터 보좌관도 1일 인터뷰에서 “기존 합의는 재협상을 하기 전까지 유효하다는 뜻이었다”며 말을 바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펜스 부통령의 말을 들어보면 누가 봐도 미국이 사드 관련 기존 합의를 결국은 파기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한미간의 기존 합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아전인수 해석을 내놓았다가 여론이 들끓자 1일 국방부를 통해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

그렇지만 국방부도 국민들을 설득시키진 못했다. “사드 비용 분담 문제는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규정에 명시된 한미 합의 사항이며, 재협상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김관진 실장이 지난해 7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언급한 “사드 비용이 방위비 분담금 안에 포함될 수 있다”는 발언의 진의에 대해선 답을 피했다. 2018년부터 이뤄질 차기 5년 간 방위비 분담협상 때 어떤 식으로든 사드 비용 청구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인정한 셈이다.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드 비용 분담은 물론 한미 방위비 분담금 요구로 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트럼프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28개 회원국에게 이미 방위비 분담금을 GDP의 2% 수준까지 올릴 것을 통첩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 공백’ 속에 우리는 사실상 아무 대책 없이 “우리 분담금이 가장 많다”는 원론적인 얘기는 되풀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국 국민들을 다독이기 위해 우리는 ‘합의 재확인’이라는 메시지를, 미국 측은 ‘재협상 가능’이라는 여지를 남겨둘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사정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보’와 연계해 안보 또는 다른 분야에서 실익을 챙기겠다는 미국의 전략에 대응하지 못하고 계속 끌려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우려한다.

1일 중국 웨이보에는 한 중국 네티즌의 이런 글이 올라왔다. “미국에도 협박 당하는 한국이 불쌍하다.” 우리 외교·군사 네트워크의 부실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라영철 기자 eli7007@viva100.com